칸 영화제에 출품된 홍상수 감독의 영화 ‘극장전’ 시사회 이튿날 기자회견장에서는 영화 내용 자체보다 난데없는 번역문제로 설전이 일었다.
그렇지 않아도 ‘극장전’의 한국 시사회 당시 상식을 뒤엎는 상황설정과 기발하고 뜬금없는 대사에 줄곧 객석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던 것과 달리 칸에서 외국 관객의 반응은 ‘이건 아니다’ 싶게 너무도 썰렁했던 터였다.
설전은 “현지 관객이 대사에 제대로 반응하지 못하는 것 같다. 번역이 잘못된 탓 아니냐”는 한국기자의 질문에서 시작됐다. 이에 대해 홍 감독이 “번역하는 과정에서 뉘앙스가 잘 드러난 것 같지는 않다”고 맞장구를 쳤다.
그러자 ‘극장전’의 공동 프로듀서이자 프랑스어 번역의 감수를 맡은 피에르 르시앙은 “한국인이 웃었지만 이쪽 관객은 웃지 못한 장면이 있었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을 번역의 문제로만 볼 것은 아니다”라고 다소 흥분한 톤으로 반박했다.
작품에 대한 질의 응답이 이어져야 할 기자회견이 갑자기 번역의 잘잘못을 따지는 논쟁 분위기로 흐르자 홍 감독은 르시앙에게 “당신이 잘못했다는 말은 아니다”라고 서둘러 상황을 수습했다.
다른 나라의 언어와 그 속에 담긴 문화를 완벽하게 번역해낸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하다. 또 ‘극장전’이 현지 관객의 관심권 밖으로 밀려나버린 것을 온전히 엉성한 번역 탓으로 돌리기는 어렵다. 그렇더라도 너무 준비가 느슨했다. 뒤늦게 ‘깜짝 초청’ 받은 탓에 섬세하게 번역을 할 시간이 없었다는 해명은 미흡하다. 더욱이 “늘 국제적 평가를 염두에 두고 영화를 만든다”는 홍 감독이 아닌가.
홍상수식 대사의 묘미는 삶의 허구성을 까발려 관객의 뒤통수를 치는 데 있다. 그 맛을 전혀 살리지 못하고 건조하게 내용만 전달하는 데 그친 번역은 못내 아쉽다.
최지향 문화부 기자 칸에서 mist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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