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한말 이래 3만 여명의 여성인재를 배출해 온 진명여고가 내년 4월21일 개교 100주년을 맞는다. 그 동안 순수 여성교육에 전념해 온 진명여고는 앞으로는 건학 이념의 현대적 계승을 통해 국제화된 인재 육성에 총력을 다할 태세다. 진명여고의 개교 100주년 캐치프레이즈 문구인 “진명 100년의 힘. 교육 1,000년의 빛”에는 이 같은 학교의 미래계획이 총체적으로 담겨 있다.
국제화 시대로 가는 여성교육의 현장
진명여고의 교명은 ‘나간다’(進) ‘밝다’(明)는 뜻으로 ‘덕을 쌓고 학업을 닦아서 나의 빛으로 겨레 온 누리를 밝게 비추며 굴함이 없이 전진한다’는 건학 이념을 품고 있다. 진명여고는 이 같은 이념을 국제화 시대를 맞아 새롭게 정비하고 있다. 우선 교사들의 견문을 넓히는데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수 년 전부터 일본 문화 체험단, 백두산 탐방단 등을 운영해 교사들의 다양한 해외문화 습득 기회를 부여해 온 것이 대표적이다. 또 교사 교환제도를 이용, 외국 학교에 교사를 파견하고 역으로 외국인 교사를 교내에 초빙함으로써 교사들의 국제적 감각을 배가 시키는 계획도 구상하고 있다.
학생들을 위한 프로그램은 이보다 훨씬 체계적이다. 일본으로 가는 임원학생 수련회를 비롯해 중국 수학여행과 해외 명문 고교와의 자매결연, 이를 이용한 교환학생 프로그램 및 방학 기간을 이용한 외국인 홈스테이 등이 준비되고 있다. 또 세계 각지에 동창회 지부를 두고 있는 동문들도 언제든지 후배들을 반길 준비를 하고 있다. 이 같은 진명여고의 국제화 전략은 학생뿐 아니라 학부모들에게도 높은 호응을 받고 있다.
내실 있는 100주년 행사 준비
진명여고는 학생들의 학업에 지장이 없는 범위 내에서 내실 있게 100주년 행사 준비를 하고 있다. 보여주기 위한 행사보다는 인재 육성과 시설 투자 등 발전계획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를 위해 교육 여건을 대폭 개선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이미 신관에는 엘리베이터, 중앙집중식 냉난방 시설을 구비했으며 전국 최고 수준의 도서관을 비롯해 특별실 현대화 작업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또 교과 교실제를 염두에 둔 공간 운영 변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수업의 질을 높여가고 있다. 장기적인 인재 육성을 위해 ‘진명 장학재단’ 설립도 추진하고 있다.
그렇다고 100주년 맞이 특별행사가 빠질 순 없다. 우선 애국심을 고취시키고 통일의지를 알리기 위해 내년 8월15일 정오에 독도 백령도 마라도 백두산을 동시에 등정하는 국토탐사단 운영 계획이 진행되고 있다. 역사적 측면에서는 100년이라는 역사를 담은 100년사 발간 준비와 함께 100년 역사를 담은 100년 찬가의 제정 작업도 진행 중이며 모든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사진첩도 2106년 개봉 예정의 타임캡슐 봉인과 함께 준비 중이다.
정보화 분야에서는 사이버 스쿨 기능과 자매결연 외국학교를 연결하는 신세대형 홈페이지를 준비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교직원들이 소질과 적성에 따라 팀별로 나누어 준비에 가담하고 있다. 이 밖에 전국 학생 백일장대회 개최와 사학의 위상과 역할에 관한 학술대회도 마련 중이다.
모교의 100주년을 후원하기 위한 동문들의 발걸음도 바빠지고 있다. 100주년 기념 바자회를 준비 중이며 동문 예술인의 합동 축하공연과 문집 발간, 미술 전시회 및 동문 걷기대회 등 문화행사도 계획돼 있다. 또 동문들의 모교 사랑과 100년 역사를 미래에 펼치자는 의미의 기념탑 제막을 위해 기본 컨셉을 정하고 제작에 돌입한 상태다.
그러나 100주년 준비의 대미는 무엇보다도 100주년 기념관 건립이 될 전망이다. 진명여고는 100주년 기념관을 단순한 전시관이 아니라 진명여고 교육의 심장부로 삼아 첨단 인텔리전트 기능을 구비한 종합적 다용도 시설로 구상하고 있으며, 재원 마련과 기념 유품 수집을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진행 중이다.
강철원 기자 strong@hk.co.kr
■ 홍문자 교장/ "전문인 키워내는 진로교육에 중점"
“인생은 꿈꾸는 자의 것이니 목표를 향해 최선을. 진명의 딸들아.”
스승의 날인 5월15일 오전9시께 진명여고생 1,700여명은 거의 동시에 휴대폰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낮선 번호였지만 메시지 내용은 같았다. ‘학생도 고객’이라는 지론을 갖고 있는 홍문자 교장이 보낸 메시지였다. 이처럼 홍 교장은 평소에 학생들과의 장벽을 없애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저녁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교실을 돌면서 사탕을 한 움큼씩 집어주며 학교 생활의 애로점을 자주 듣는 것도 같은 연유에서다.
홍 교장은 진로교육과 여성교육, 독서교육 등 3개 분야에 대한 교육관을 항상 강조한다.
“예절교육이 생활화한 탓에 80년대까지만 해도 학교에서는 ‘현모양처’들을 많이 배출했습니다. ‘회장님 부인’들은 대부분 진명 출신이라는 우스개 소리도 있었지요. 하지만 지금은 예절교육과 더불어 전문인을 양성하기 위한 진로교육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학교는 1학년 때부터 수시로 사회 각 분야에 진출한 졸업생들을 초청, ‘나는 왜 공부를 하는가’ ‘내가 가야 할 길은 어디인가’ 라는 물음에 해답을 제공하고 학생들의 진로 선택을 돕고 있다. 학생들의 호응 정도에 따라 ‘졸업생들과의 만남’ 시간도 더욱 확대시켜 나갈 계획이다.
또 독서교육도 진명이 자랑하는 부분이다. 도서관 1년 예산이 연간 2,000만원이 넘는데다 교실 7개를 합쳐 놓은 크기에 각종 장서는 물론 첨단 멀티미디어 시설을 구비해 놓고 있다. 홍 교장은 하루 평균 300여명이 도서관을 이용할 정도로 학생들의 독서력 증진에 크게 기여하고 있으며 이용 학생들의 규모에 맞춰 시설 증진도 염두에 두고 있다.
“진명의 명성이 예전만 못하다는 평도 있지만 여학교는 나름대로 장점이 있는 만큼 이를 잘 활용할 것입니다. 또 남학교보다 상대적으로 적었던 졸업생들의 학교 발전기금 모금도 획기적으로 끌어올려 학교발전의 기틀을 만들 생각입니다”
학교발전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홍 교장은 개교 100주년을 맞는 내년을 기점으로 4대 명문사학으로의 재도약을 확신하고 있다.
강철원 기자 strong@hk.co.kr
■ 걸어온 길
진명은 한국의 초기 신식 교육이 이화학당이나 배재학당처럼 외국인 선교사들에 의해 이뤄지던 당시 흐름과는 달리 개화 운동의 영향을 받아 순수 민족자본으로 설립됐다. 민족 의식을 자각, 선각자 교육의 필요성을 깨닫는 과정에서 당시 국모의 역할을 하던 엄순헌 귀비의 재정지원에 의해 엄준원 선생이 1906년 창학의 깃발을 꽂았다.
초기에는 소수의 학생으로 출발, 1911년 1회 졸업생 10명을 배출했다. 수업료는 물론 교복과 학용품까지 학교에서 지급하다 1915년부터 수업료를 받았고 입학희망자가 대거 몰리면서 1925년부터는 입학고사를 치러 학생을 선발, 명문 여학교로 자리잡아 갔다.
해방 후에도 진명은 투철한 민족의식을 바탕으로 명성을 이어갔다. 1953년에는 휴전반대 시위를 주도해 미국 시사주간 뉴스위크의 표지사진을 장식하기도 했고 1958년에는 삼일당으로 명명된 초현대식 강당을 준공해 이승만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개관식을 갖기도 했다. 1988년 진명여중을 폐교하고 1989년 지금의 목동 교사로 이전, 지역교육 발전을 선도하는 학교로 거듭나고 있다.
94회에 걸쳐 3만여명의 인재를 배출한 진명여고는 특히 문화계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국내 최초의 여류 서양화가인 나혜석 선생을 비롯, 한국 최초의 여성 판사인 황윤석, 시인 노천명, 무형문화재 매듭장인 김희진, 연극배우로 유명한 박정자, 한국방송작가협회 이사장 박정란, 한국장애인복지진흥회 상근 부회장 황연대, 성악가 김청자, 주부교실 중앙회장 이윤자 전 국회의원 등이 대표적으로 진명을 빛낸 인물들이다. 이밖에 방송인 최화정, 탤런트 전양자, 영화평론가 유지나, 그룹 빅마마 멤버 이영현 등도 진명 출신으로 대중문화를 선도하고 있다.
박원기 기자 o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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