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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法보다 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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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法보다 감정

입력
2005.05.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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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는 복잡하고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혀지며 관습의 영역을 벗어나는 사회문화 영역이 빠르게 창출되고 있다. 현재의 법은 국가의 통치수단이기 전에 구성원의 자아를 실현하기 위해 보장받아야 할 최소한의 규범으로 기능하고 있다. 현재의 법 제도가 다양하게 발전하는 사회상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보는 시각이 자연스러울 것이다.

최근에 발생한 몇 가지 사건 중 안타까운 일이 있었다. 국적을 포기하는 자들에 대해 신원을 공개하라는 요구, 연예인과 연예기획사와의 노예문서와 같은 계약체결 여부와 관련한 방송폐지 요구, 어느 국회의원의 단지(斷指)에 대한 해명 요구 등 언뜻 보면 모두 공공의 관심사로 여론의 향방이 중요해 보인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두 사적영역을 어느 정도 침해하는 부분이 있다. 국민의 알 권리 차원을 벗어나 단죄까지 요구하는 것이 다른 헌법적 가치를 훼손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문을 들게 하는 것이다.

현행법에 저촉되지는 않더라도 불공정한 거래행위나 병역기피의도 등의 의혹에 대해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면 문제점을 지적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들에게 법이 허용된 범위 이상의 선택을 강요할 수는 없다.

헌법에는 무국적의 자유라는 것이 있다. 고대철학에 따르면 무국적자는 더이상 권리의 보장이 없는 불쌍한 존재라고 표현되었지만 어쨌든 현대에도 개인에게 국적을 강요할 수는 없다. 다만 국적 취득과 이탈에 엄격한 제한을 두어 혼란을 방지하기 위한 장치를 둘 수는 있으며 이번 국적법 개정에서 반영하였듯 병역기피목적의 국적포기를 법으로 방지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국적법 개정에 앞서 국적포기를 하려 했던 자들을 도덕적으로 비난할 수는 있으되 명단을 공개하라고 요구하거나 국적포기를 못하도록 강요한다면, 이는 개인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행위로 오히려 비판할 명분을 잃을지도 모른다

연예인 노예계약 파문은 서로의 불만과 불신을 여론을 이용해 해결하려다 부당한 구조적 관행문제로 확대되어 서로의 양보를 얻어내는 선에서 결론 난 것 같다.

결국 이번 사태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며 온갖 간섭을 행한 여론의 모습만 우습게 되었다. 사회 구성원간의 계약은 지켜져야 하는 것이고, 계약을 잘못 체결해 일방이 피해를 입었다 하더라도 당사자들이 법적ㆍ도덕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이에 대해 도를 넘어선 간섭은 관련 연예인에 대한 실망과 반감으로 이어져 이들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의 퇴출을 요구하는 웃지 못할 책임 추궁까지 전개된 것이다. 아무리 공인의 책임범위가 보통 사람보다 크다고 하나 개인의 경제활동 영역까지 간섭하는 것은 부당한 사생활 침해의 요소가 있다.

386세대의 대표주자 격인 국회의원의 단지(斷指)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을 수 있다. 일제시대 독립을 위해 징병을 거부했던 것만큼은 아니라 해도 서슬 퍼런 군부독재시대에 군대를 갈 수 없었던 이유가 공감이 되기도 하나, 단지가 오로지 병역 면탈이 목적이었다면 현재의 도덕적 기준으로 보아 비판을 완전히 피해갈 수는 없어 보인다.

그러나 단지(斷指) 해명요구가 전혀 다른 혐의로 수사대상에 오른 국회의원의 이미지를 깎기 위한 정략적인 의도에서 나온 것이라면 대단히 문제가 된다. 개인에게는 불행하고 아팠던 기억을 새로이 강요하며 불필요한 고통을 줌으로써 부당한 인격 침해를 야기할 수 있는 것이다.

공인에 대한 비판이든 개인간의 문제이든 인정과 감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모습은 이 사회의 법치주의와 어울리지 않는다. 검찰이 명예훼손 전담부를 만들겠다고 한 것도 개인의 사생활과 명예를 좀더 강력히 보호하겠다는 취지일 것이다.

우리 사회가, 사회구성원이 인격과 권리를 존중하는 바탕 위에서 건전한 비판문화를 일구어가는 진정한 투명사회로 나아가길 기원한다.

조성오 환경운동연합 법률센터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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