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고전(延高戰), 혹은 고연전이 한바탕 연극 무대에서 펼쳐진다. 올해는 연세대 창립 120주년, 고려대 100주년인 해다. 흥겨운 축제 마당이 될 무대지만, 질 수 없다는 생각이 은연중 배어 있음은 어쩔 수 없다. 공연 시기마저 거의 겹쳐있다.
양교의 색깔이 그렇듯 무대 분위기도 선명하게 대비된다. 연세극예술연구회의 ‘한여름밤의 꿈’이 여름 밤 야외 무대의 낭만을 듬뿍 선사한다면, 고려대 개교 100주년 기념 연극 공연 사업단이 준비한 ‘당나귀 그림자’에는 현실 풍자의 정신이 가득하다.
우선 고려대는 ‘당나귀 그림자’를 통해 연극이 동시대 현실과 어떻게 관계 맺어야 하는가를 보여 줄 참이다. 이솝 우화에서 영감을 받은 독일 작가 마틴 빌란트의 소설 ‘압데라 사람들 이야기’의 일부를 극화했다. 동시대 한국의 상황을 빗대고 기발한 법정 투쟁 장면 등으로 풍자극의 정수를 보여주겠다는 각오다.
출연진이 만만찮다. 박규채(58학번), 여운계(58”), 손숙(63”) 등 연극계의 중견은 물론 박계동 노회찬 등 현역 국회의원에다 주철환 이화여대 교수, 강재형 아나운서 등 낯익은 사람들이 우정 출연한다. 김동성(쇼트 트랙), 이천수(축구) 등 스타급 선수, 어윤대 총장 등은 깜짝 출연한다.
연출을 맡은 장두이 씨는 “개교 100년을 맞는 시점에서 광복 60주년의 의미를 확인하고 싶었다”며 현실 발언 수위를 높인 배경을 밝혔다. 법리 문제에 관한 자문을 위해 방송통신대 법학과 조승현 교수(83학번)가 제작에 참여하고 실제로 출연도 한다.
제작진은 그러나 “음악, 율동, 춤, 마술, 특수 조명 등 대극장에 어울리는 볼거리 덕에 모든 연령이 즐길 수 있는 가족극”이라고 강조한다. 공연 수익금은 고려대 연극관을 건립하는 데 쓰일 예정이다.
연세대측은 개교 100주년이던 1985년 교내 노천극장에서 ‘최단 기간, 최다 관객 동원’ 기록을 세운 관록을 내세워 자신감을 보인다. 사실 10년 뒤 연세 창립 110주년 기념 공연, 1999년 노천극장 확장 기념 공연 등 큰 무대에서 쌓아 온 역량이 만만치 않다. 이번 무대에서는 원작 특유의 유머 감각을 보다 아름다운 한국어로 윤색하고 동시대 감각의 춤과 음악으로 되살려 낼 계획이다.
배우 오현경(56학번)이 예술 감독을 맡았고, 서현석(75”)이 기획, 85년 당시 재학생으로 출연했던 서울예대 연극과 임형택(82”) 교수는 이번에 연출자로 나섰다. 왕년의 아나운서 임택근, 중견 배우 오현경 서승현 등이 티시어스 퀸스 히폴리타 등 주요 배역으로 교정을 다시 찾는다.
이번 공연을 계기로 연세대는 지역 문화의 허브로서의 위상을 새삼 확인할 계획이다. 신촌 일대의 복지원 등에 초대의 뜻을 알리는 한편 일대 주민들에게는 주민등록증 확인 후 입장료를 반으로 할인해 주고 미처 혼례를 치르지 못 한 부부들에게는 극 후반부의 결혼식에 출연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초여름 밤의 진짜 꿈’을 현실화시킨다.
예측을 불허하는 팽팽한 예술의 대결. 일반 관객의 즐거움은 배가된다. 잇달아 두 편을 비교 감상할 수 있는 까닭이다. ‘한여름 밤의 꿈’은 5월26~28일 저녁 7시30분 연세대 노천강당에서(02-393-3942), ‘당나귀 그림자’는 6월 2~4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02-953-1853) 각각 올려진다.
장병욱 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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