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지 않은 과거를 되돌아 보는 일은 추억과 낭만이라는 달콤한 단어들로 포장되기 십상이다. 돌이킬 수 없는 시간에 대한 아쉬움과 각박한 현실을 잊고싶은 욕망은 곧잘 지난 날을 돌아가고 싶은 호시절로 묘사한다.
최근 불기 시작한 7080세대의 지난 시절 노래하기도 경제 불황에서 오는 심리적 압박감을 과거에 기대 해소하고픈 바람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지난 시절의 음악은 단지 향수라는 감성적인 단어로 향유할 대상만은 아닐 것이다. 역사적 맥락에서 되짚어보고 평가했을 때 진정한 우리의 과거로 자리 매김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화’라는 과장된 형용사를 덜어 내고 ‘그 때 그 시절’의 노래를 입체적으로 되돌아보는 책이 나왔다.
‘글로벌, 로컬, 한국의 음악 산업’ ‘얼트 문화와 록 음악’ 등 대중 음악과 사회의 관계에 천착해온 신현준 성공회대학교 연구교수가 대중음악 평론가인 이용우, 최지선씨와 함께 두 권으로 나눠 펴낸 ‘한국 팝의 고고학’은 1960,70년대 한국 대중음악의 부흥과 쇠락을 촘촘히 엮어냈다.
저자들은 60,70년대의 우리 대중음악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책은 한국적 팝의 흔적을 좇아 일제 강점기부터 시작한다. 영국과 미국의 음악 뿐만 아니라 샹송 탱고 등 모든 서양의 대중음악은 쟈스라고 불렸던 시절의 악극단 활동을 통해 대중음악의 원류를 찾는다.
제목에 고고학이라는 꼬리표가 붙여진 데서 추측할 수 있듯이 책은 어려운 ‘발굴’과정을 통해서 구한 숱한 자료들로 구성되어있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나 흐릿하게 존재할 만한 음반 표지와 당대를 풍미했던 스타들의 공연 모습 등 800여장의 사진이 책의 상당부분을 차지 하고 있다.
이제는 세상을 떠난 옛 스타들의 얼굴을 대면하는 것과 아직도 생존해 활동하고 있는 가수들의 앳된 모습을 보는 것은 그 자체로 반갑기 만하다.
‘한국 팝의 고고학’은 당시 언론의 보도를 통해 우리 대중문화의 과거를 복원할 뿐만 아니라 고 김대환 김인배 신중현 한대수 등 대중음악 판을 쥐락펴락했던 가수 연주인 매니저 작곡가 등 41명의 인터뷰도 함께 실어 지나간 시대를 현재로 불러낸다.
가왕(歌王)이라 불리는 조용필이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무대에 서기 위해 두 차례의 가출을 했다가 고 김대환을 만나 대중음악계에 입문하는 과정이 담긴 내용과, 신중현이 미8군 무대에 섰을 때를 회고하는 이들 인터뷰는 과거를 복기하는 쏠쏠한 재미를 넘어서 학술적으로도 상당한 가치를 지닌다.
농촌에서는 뽕짝이 환영 받고 도시에서는 팝이 유행했던 60년대의 풍경을 정치판의 ‘여촌야도(與村野都)’에 빗대 ‘뽕촌팝도’라고 결론 내리는 저자들의 시각도 흥미롭다.
그러나 책은 자료의 단순한 나열에 그치지 않는다. 대중음악이 당시의 시대상과 어떻게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돋보기를 들이댄다.
미8군 쇼 무대에서 시작하여 방송무대, 생음악 살롱 등으로 영역을 넓혀가는 대중음악이 암울했던 유신 정권 아래 ‘대마초 파동’과 ‘가요정화운동’을 거쳐 몰락해 가는 과정에는 정부 문화정책의 변모과정이 상세하게 담겨져 있다.
신 교수가 서문에서 밝힌 “이 책은… 대중문화와 대중음악 전체가 아니라 ‘팝’이라는 기표와 연관되어 발생하고 발전한 문화적 쇄신에 대한 연구이다”는 말이 공허하게 들리지 않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