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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아프리카인 - '어머니의 땅' 아프리카에 바치는 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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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아프리카인 - '어머니의 땅' 아프리카에 바치는 서정

입력
2005.05.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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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 클레지오의 소설 ‘아프리카인’은 삶의 운명적인 한 단층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 단층은, 단절된 시간의 흔적이 아니라, 이어짐의 한 부분에 맺힌 핏줄의 마디 같은 것이다.

작가는 그것을 변덕스러운 기억이 아니라 직관과 몸의 뚜렷한 감각으로 발굴해서 복원한다. 그것은 아버지의 삶이자, 작가의 유년 한 시절의 이야기이면서, 자신의 현재 이야기이다. 그리고 어머니의 땅, 아프리카에 대한 맑고 웅장한 서정의 오마주다.

2차대전 종전 직후인 1948년, 8살의 클레지오는 어머니와 함께 아프리카 서부 ‘오고자’라는 마을로 떠난다. 식민정부 하의 의무(醫務)장교로 일하던 아버지와 합류하기 위해서다.

나치 치하의 프랑스에서 인자한 여성들(할머니, 어머니)의 품 속에서 보호되던 ‘나’의 삶은 거침없는 햇살과 한밤의 폭풍우, 끝없는 황갈색 사바나의 풍경 앞에, 폭력적이기까지 한 혼란을 경험한다. “…지나간 삶의 모든 것을 지워가고 있었다.

전쟁, 비좁은 아파트에서의 생활…, 이제부터 나에게는 아프리가 이전과 이후가 존재할 것이다.”(17쪽) 그것은 ‘자유’였다. 맨발로 사바나를 뛰어다니며 키보다 높이 솟은 흰개미 집을 일삼아 무너뜨리거나 독충 전갈과 맨몸으로 대면하는, “나 자신을 가늠하고자 하는 욕구, 지배하고자 하는 욕구”의 충족이었고, 길들여지지 않아 위험하기까지 한 자유였다.

그 자유와 함께 유년의 작가는, 난생 처음 아버지의 엄격한 세계에 직면한다. 규율과 금지, ‘남성의 법질서’의 시간. 작가의 눈에 비친, 의사이기에 앞서 제국의 군인이었던 아버지는 두려우리 만치 권위적이었고, 비관적이었으며 우울했다. ‘나’에게 그는 ‘이방인’이었고, “거의 적과도 같은 존재였다.”(121쪽)

작가는 아프리카에서 22년을 보낸 아버지의 흑백 사진들을 매개로, ‘상상적 리얼리티’로 당신의 삶과 자신의 유년 기억, 아프리카의 의미를 되짚어간다.

제국의 순응주의에 환멸을 느낀 나머지 젊은 희망을 찾아 아프리카 파견근무를 자원했던 아버지는, 작가와 대면했던 그 시절에는 깊은 절망의 늪에 빠져들던 시기였다.

열정 하나로 오지를 누비며 치명적인 질병들과 싸움으로써 인류애를 실천하고자 했던 젊은 의사, 아름다운 아내와 동행하며 열대의 관능과 순결한 사랑으로 작가와 형을 잉태했으나, 전쟁과 식민주의의 폭력으로 하여 상실의 상처를 견뎌야 했던 고독한 존재…. 당시의 아버지는 “분노가 정도를 넘어 극단으로 치닫던” 시절이었다. 그것은 꿈의 좌절, 삶의 실패를 자각한 데서 오는 분노였다.

전통적 아프리카인에게 탄생 시점은 출산이 아니라 수태의 순간이라고 한다. “나의 직관은 아직 수태가 이루어지지 않은, 그 순간을 선행하는 아프리카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포착한다.”(104쪽) 또 “내가 수태되던 그 순간, 내가 태어난 그 순간 나를 품에 안고 젖을 먹여준 그 어머니를, 내 아프리카 어머니를 상상할 수 있다.”(144쪽)

르 클레지오는 노년의 아버지를, 망가져가는 아프리카의 모습을 완고한 침묵으로 버텼던 당신의 삶을, 그 고독과 비탄을 이해하게 된다. 올해 65살인 작가의 그 이해는, 기아와 질병의 아프리카 현실과 관계된 자신의 오랜 꿈을 기만하지 않겠다는 다짐과 같은 의미일 것이다.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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