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남한을 모르고, 남한은 북한을 너무 모릅니다.”
69세의 재미동포 사업가 김찬구씨가 16년 동안 사업차 북한을 드나들며 겪은 크고 작은 사연을 ‘아, 평양아…’(비봉출판사 발행)라는 책에 담아냈다. 20일 오전 서울 삼청동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세미나실에서 만난 그는 1989년 북한에 첫발을 내디디며 시작한 대북 사업 경험담을 하나씩 풀어놓았다. “실패도 숱하게 겪었어요. 동족이라 그런지 뭐든지 잘 해 주고 싶더군요. 사업은 냉정해야 하는데…. 매번 실망하면서도 동포들 얼굴이 계속 떠올라 평양행 비행기에 몸을 싣곤 했지요.”
김씨는 경남 진주에서 태어나 부산 수산대(현 부경대)를 졸업하고 원양어선 항해사 및 선장으로 일하다 39세 때인 76년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미국에서도 수산물 수출입업과 봉제공장을 하다가 88년 서울올림픽을 전후해 북한과의 사업 가능성을 타진하기 시작했다. “88년 말 수산물을 수입하러 소련에 갔는데 북한이 소련에서 배정받은 명태잡이 쿼터를 30%밖에 소화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이듬해 7월 해외동포의 북한 방문이 허용되면서 본격적인 대북 사업에 뛰어들었지요.”
첫 사업은 당초 구상한 명태잡이가 아니라 선박수리사업소 건설이었다. 하지만 2년 가까이 시간만 끌다 걸프전이 터지면서 무산됐다. 이어 투자한 신발공장은 남한 기계를 사용할 수 없다고 우기는 바람에 상표를 뜯어내고 돌리기도 했다. 김씨는 “이 때부터 북한이 예측할 수 없는 상대임을 깨달았습니다”며 “이후에도 몇 번이나 약속을 어겨 심한 배신감을 느낀 적도 있었지요”라고 토로했다.
그는 수십 번의 시행착오를 거치면서도 골뱅이 수입, 가리비 양식, 봉제완구공장, ㈜엘칸토 평양공장 추진 등 각종 사업을 착실히 해 나갔다. 당시 북측과 교환한 계약서, 실무자들 이름, 사업일지 등 각종 자료는 고스란히 책(2장 ‘북한을 위한 사업들’)에 실었다.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89년)과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91년)의 방북에 동행했던 사연, 이산가족을 찾아주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던 이야기도 털어놓았다.
김씨는 남한의 실속 없는 대북 경협과 북한의 고압적인 태도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했다. “북한은 중국이나 동남아와 비교해 결코 싼 임금에 질 높은 노동력을 제공하는 곳이 아닙니다. 오히려 남한 수준의 임금을 요구하며 생떼를 부리기도 하지요. 남한은 북한을 짝사랑만 할 것이 아니라 줄 것은 주되 체면을 차리는 경협을 해야 합니다.”
그는 올해부터는 평양을 찾지 않을 생각이다. 북측의 가까운 지인들에게도 하기 힘들었던 쓴소리를 책에 기록으로 남긴데다 사업 파트너였던 혁명 1세 대부분이 일선에서 물러났기 때문이다. 대신 지인들을 그리는 애틋한 마음을 4장 ‘아쉬움을 남기고 헤어진 사람들’에 담았다. 북한 관련 강의 활동은 더욱 활발히 할 계획이다.
김씨는 “미국 시민권자인 덕분에 북한과 오래 인연을 맺을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이 기업인들에게는 안내서 역할을, 학생들에게는 올바른 북한관을 심어 주는 지침서 역할을 하기를 바랍니다”라며 말을 맺었다.
김명수 기자 lece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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