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넨알레(sonnenalleeㆍ태양의 가로수길). 독일 베를린을 관통하는, 분단시절에는 장벽에 막혀 60㎙가 동베를린에 들었던 도로다. 토마스 브루시히의 ‘존넨알레’는 동독 구간 도로변에 살던 청소년들의 성장통을, 킥킥대며 읽게 쓴 소설이다.
우디 알렌이 했다는, ‘코미디는 비극 더하기 시간’이라는 말처럼, 그의 코미디는 경과된 시간의 방어막 뒤에서 경과 전 시간의 뒤틀린 일상을, 그 불합리를, 10대 악동들의 설익은 갈망의 흔적들로 넌지시 보여준다.
이야기는 주인공 ‘미햐’와 주변인들이 겪는, 과장과 은유와 상징의 에피소드들이다.
사이클 선수가 되라는 체육선생의 권유에 3.45㎙(베를린 장벽 높이)보다 더 높이 뛸 수 있는 장대높이뛰기를 하고 싶다고 대꾸하는 친구, 입대한 뒤부터 멋진 농담 재주를 잃고 ‘밥 먹자’는 말조차 “취식할 수 있습니까?”라고 묻는 형, 2년 마다 긋는 국경선 페인트 선을 서독쪽으로 10㎝ 넘겨 그은 뒤 “이 추세라면 7천만년 뒤 동유럽은 아틀란타 해안까지 다다를 것”이라고 말하는 국경경비원, 압수한 일제 하이파이 스테레오의 전원을 꽂는 순간 국경 일대가 정전되고, 경보 발령으로 조명탄이 발사되자 그것을 불꽃놀이처럼 즐기는 주민들, 조카에게 줄 과자봉지를 장딴지에 숨긴 채 식은 땀 흘리며 국경 검문소를 넘어오는 서독의 삼촌(하지만 과자봉지 휴대는 합법이다) 등등….
압권은 미햐가 생애 최초로 받는 연애편지 이야긴데, 그는 자신이 짝사랑하는 소녀가 보낸 것일 지도 모르는,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는, 개봉도 못한 그 편지를 ‘무차별 발포지역’에 떨어뜨린다. 편지를 잃고, 그것을 꺼내기 벌이는 악동들의 간절한 노력들은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상실한 젊음 혹은 자유의 거대한 알레고리로도 읽힌다.
그들의 상처는 때로 직설적인 화법으로도 전해진다. 가령, 진로를 고민하며 ‘비정치적 학업진로’가 있느냐는 물음을 보면. “건축학은 어때?” “독일사회주의 통일당의 의도에 따른 집들을 짓기 위해서지.” “역사학은?” “고대 역사학조차 이미 그 시절부터 독일사회주의 통일당을 얼마나 간절히 원했는지를 가르칠 뿐이지.” 친구의 애인인 ‘실존주의자 여인’은 저녁 내내 에디트 피아프의 ‘난 후회하지 않아’를 들으며 이런 말을 한다.
“누구도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것을 할 필요가 없어. …만일 다른 모든 이들을 자유롭게 만들고 싶다면, 너 자신을 그냥 자유롭게 해.”
시간이 개입된 사건은 모두 ‘기억’의 형식으로 존재한다. 하지만 작가는 “인간의 기억은 지나간 것을 꽉 잡아두기에는 너무나 느긋한 과정”이며 “(동시에) 끈기 있게 과거와 평화를 맺을 수 있는 기적을 행한다”고 말한다. “행복한 사람들은 나쁜 기억력과 풍부한 기억들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 경과되지 않은 시간에 속해있는 우리에게 책 속의 어떤 에피소드는 고통스럽다. 브루시히의 얄미운 말처럼 ‘코미디를 위한 시간’이 도래할 때까지 기다려볼 일이다.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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