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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 영리법인 병원 도입은 毒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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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 영리법인 병원 도입은 毒이다

입력
2005.05.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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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금요일 오전 한 후배의 전화를 받고 가슴이 탁 막혔다. 보건복지부가 영리법인 병원 도입을 검토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미 오래 전부터 재정경제부와 경제계가 한 목소리로 영리법인 도입을 주장해온 것이 사실이지만, 주무 부서인 보건복지부가 그렇게 쉽게 이를 받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는 의료기관에 대한 ‘자본의 참여를 활성화’하기 위해 영리법인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수단과 목적이 뒤바뀐 것이다. 의료기관은 ‘국민의 건강에 도움이 되는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지, 민간 유휴 자금의 투자처가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남아도는 자본이 있다면 생명과학 연구나 나노의학 등 첨단 의학에 투자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병원이 영리법인이 되어 이들 자본이 의료시장에 들어오면, 진료비는 오르겠지만 서비스의 질은 굉장히 높아질 것으로 선전하는 것은 명백한 허구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인구대비 병상수는 이미 과잉 상태이다. 그렇다면 새로 들어오는 자본은 대부분 의료의 질과는 밀접한 상관이 없는 병원의 인테리어나 값비싼 장비 도입에 쓰일 것이고, 이는 곧바로 의료비의 상승으로 귀결될 것이다.

쉽게 말해서 환자들은 똑같은 의사에게 똑같이 진료를 받더라도 투자된 자본에 대한 이윤을 높이기 위해 불필요한 검사나 치료를 받게 될 것이고, 또 호텔 같은 시설의 이용 비용으로 엄청나게 많은 의료비를 지불하게 된다는 말이다.

물론 이러한 비용이 문제가 되지 않는 상위 몇%의 부자들에게는 병원의 영리법인화가 반가운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지금도 의료 이용에서 소외되고 있는 서민은 물론 대다수의 중산층들에게도 이는 엄청난 재앙과도 같은 정책이다. 의료 서비스란 환자에게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반드시 이용해야 하는 공공재이기 더욱 그렇다.

복지부는 또 영리법인이 되어도 가져갈 이윤이 적기 때문에 투자가 그렇게 많지는 않을 것이라거나, 공공의료를 확충하고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강화하면 영리법인화의 문제점을 해소할 수 있다는 등 앞뒤가 맞지 않는 얘기로 국민들을 기만하고 있다.

투자가 많지도 않을 거라면 왜 이런 반대를 무릅쓰고 우리 의료체계와 국민건강에 악영향을 끼치는 무리수를 두는지 납득할 수가 없다. 복지부가 안이하게 생각하고 있는 영리법인 병원 도입이 가져올 파급효과는 쉽게 되돌릴 수 없는 파국적 결과를 초래할 것이 너무도 자명해 보이는데 말이다.

공공의료를 전체의 30%로 확충하겠다는 참여정부의 핵심 공약은 지금까지 로드맵조차 제시되지 않고 있고,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80%로 확대하겠다는 공약은 목표가 70%로 낮아졌으며 그것 역시 재정 여건에 따라 불투명한 상황이다.

오히려 건강보험에 대한 국고 지원이 대폭 삭감될 위기에 처해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공공의료 확충과 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 운운은 병원의 영리 법인화를 관철하기 위한 술수로밖에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정부의 ‘의료서비스 육성 방안’에 절망하는 가장 큰 이유는, 정부가 당면한 보건의료 문제의 핵심을 잘못 알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2025년이 되면 우리나라는 초고령 사회로 진입하고, 이에 따라 의료비는 천정부지로 올라갈 것이다.

이에 대비해서 우리는 낭비적이고 비효율적인 의료시스템을 시급히 개편해야 하는 당면과제를 안고 있다. 여기에다 현재 50%에 불과한 의료보장제도의 보장성을 선진국 수준인 80%까지 올려야 하는 과제 또한 안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의료비 증가를 가속화하고, 사회계층간 의료보장 수준의 양극화를 심화시킬 것이 너무도 분명한 병원의 영리법인화라는 정책을 제시한 정부에 대해 할 말을 잃게 된다. 의료를 시장에 맡기자는 영리법인화의 길은 당장은 입에 단것일지 모르지만, 우리의 의료체계와 국민건강을 해치는 ‘독’이 될 것이 자명하다.

조홍준 울산대 의대 가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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