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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중심 부재

입력
2005.05.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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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핵 문제가 가파른 위기상태이지만 어찌 보면 더 큰 발등의 위기가 우리 자신에게 일어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노무현 대통령이 그제 광주에서 성숙한 시민사회와 창조적 참여를 강조하며 갈등구조의 문제를 언급한 것을 들으면서 갖게 되는 역설적 생각이다.

노 대통령은 “시민사회가 이제 위상에 걸맞게 한층 더 성숙한 모습으로 발전해 가야 하며, 대안을 내놓는 창조적 참여를 통해 우리 사회의 합의 수준을 높여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언뜻 하기 좋고, 듣기도 좋은 지당한 덕담이다. 그러나 그렇게 넘어가기에는 목에 가시가 걸리듯 뭔가가 탁 걸린다.

당연한 말이 문맥 그대로만 들리지가 않으면 그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아마도 말 자체 보다도 그 말이 필요하게 된 현실과 상황이 더 심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대통령의 말을 뒤집으면 시민이 누구나 정부나 정치권에 못지않은 강력한 발언권을 갖고 있지만 아직 이해관계를 탈피하지 못하는 이기적 수준이며, 이로 인해 빚어지는 다툼과 충돌이 파괴적이라는 지적으로 이해된다. 그런데 이를 하나하나 해결해 가는 것이 힘겨우니 함께 도와달라는 호소를 하고 있는 것으로 들린다.

상황이 그렇다는 것은 엄살도 과장도 아닐 것이다. 대통령의 어록으로 대입하자면 “대통령직 못해 먹겠다”는 말이 다시 나올 정도는 아닐까. 실제 우리가 겪는 갈등과 혼돈은 도처에 사사건건이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비리와 부정이 정권과 야당에서 무차별적이다. 굵게만 따져 유전의혹과 청계천개발 비리가 있지만 이는 권력형이거나 관료형, 냉소적으로 말해 ‘익숙한’ 것들이다. 그런데 그 뿐인가. 공금유용에 취직장사도 마다 않는 노조의 비리는 도덕적 기반을 파탄시킨 파렴치형이다.

수도권과 지방발전 대책을 놓고 벌어진 이해찬 총리와 손학규 경기지사의 충돌은 아무도 누구의 말을 얌전하게 듣거나 수용하지 않는 세태변화의 한 예다. 교육부에 대학은 정면으로 대꾸하고, 대통령자문위가 내놓는 사법개혁안에 대해 검사들이 집단으로 들고 일어난다. 고1 학생들이 입시제도를 비난하는 촛불시위도 할 정도로 모든 이의 주관이 주체적이다.

정치권의 속을 짐작할 수 있는 국회 지도자의 말을 들어보자.

“지금 여당에 초선의원이 70%가 넘어요. 세계적으로 전례가 없지요. 나이와 세대가 확 내려가고 돈을 써서 다스릴 수도 없어요. 혁명적 변화예요. 솔직히 과거엔 국회의원이 거수기였지요. 사실 정치란게 없었다고 할 수 있어요. 청와대와 당 총재가 결정하고 뒤에서 지시하는 게 전부였거든요. 당정분리는 실제예요. 요즘 국회에 왜 이석이 많은지 아세요. 예전엔 총재가 뒤에 앉아 있으면 의원들이 눈치라도 봤지만 이젠 의원들에게 두려움을 주는 리더십이 없어요. 엄청난 과도기예요.”

그의 말은 새 국회 정치권의 변화를 담담히 전하는 데 머물러 있지만 정치의 흐름 속에 자리잡아야 할 중심이 없다는 뜻은 충분히 읽힌다. 보다 정확히 말해 중심은 없는 게 아니라 무너진 것이다. 정치만이 아니다. 시민사회가 성장했지만 중심 없는 성장이 문제로 나타난다.

과도기가 아니라 차라리 해체기라고 하는 것이 맞는 표현 아닐까 싶다. 중심 부재의 문제는 막연한 소리가 아니다. 단적이고 명확한 증거는 30%대에서 게걸음치는 대통령 국정지지도다. 통치의 잘못은 다른 모든 잘못을 상징한다. 그렇다고 비난과 비판만도 능사가 아니다.

나아질 전망도 찾기 어려운 탓에 그러고 말기에는 솔직히 앞날에 대한 두려움이 더 앞선다. 경제활력과 국민화합을 위한다는 경제인 사면대열에 대통령 측근인 강금원씨를 포함시키는 몰염치를 보면서 느꼈던 충격과 절망도 좀체 가시지 않는다.

대통령의 공과 사가 거리낌 없이 뒤섞여 버리면 통치력의 영과 권위는 치명상을 입는다. 여기서 무슨 전망이 가능할 것이며, 어떤 호소가 먹혀들까 걱정이 드는 것이다.

조재용 논설위원jae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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