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에서 비롯된, 해프닝 같은 일이라고 여겨 그냥 넘어가려고 했지만, 말 한마디가 천금 같아야할 사람의 짧은 언행이 국가경제에 지운 짐이 너무 커 고언(苦言)을 해야겠다. 박승 한국은행 총재 얘기다.
박 총재는 최근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주요 외신들이 우리나라의 시장정책에 대한 이해부족으로 잘못된 보도를 일삼는다고 판단, 중앙은행 총재로서 FT와의 인터뷰를 자청했다.
통화신용정책의 수장이자 세계 4위의 외환보유액을 관리하는 그인 만큼 달러약세로 인한 세계경제의 혼돈과 한국의 대응에 대한 질문이 나왔고, 박 총재는 “국가 신용도를 지키는데 필요한 외환을 충분히 확보하고 있어 외환보유액이 더 이상 늘어나지 않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모범답안을 내놨다.
하지만 FT는 이 말을 인용한 뒤 “한국 중앙은행이 더 이상 외환시장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뜻을 시사했다”고 보도했고, 이를 환율방어 정책의 포기로 해석한 세계의 외환딜러와 환투기 세력이 시장을 휘저어 원화 환율은 급락했다.
뒤늦게 한은이 발언의 진위가 와전됐다며 “투기자금이 개입되면 적극 대처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시장에도 직접 개입, 10억달러 가까이 달러를 사들여 간신히 파문을 수습했다. 한덕수 경제부총리까지 나섰지만 결과적으로 박 총재 말 한 마디를 수습하는데 1조원 가까운 돈이 든 셈이다.
파문은 그럭저럭 수습됐지만 우리기업의 수익성을 끊임없이 악화시키는 환율문제에 대해 중앙은행 총재가 너무나 가볍게 처신했다는 점은 비판받아야 마땅하다. ‘외환 수익성 증대를 위한 투자 대상 통화 다변화’라는 부주의한 문구 하나로 세계 외환시장을 교란했던 게 불과 3개월 전이다.
박 총재는 경기 진단에서도 벌써 수차례 말을 바꿔 ‘그때 그때 달라요’라는 코믹한 지적을 받아왔다. 세계 외환시장의 ‘큰 손’으로 떠오른 한은이라면 그 수장의 언행은 더욱 진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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