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 전 원고를 기억하는 독자들이 몇 분이나 되랴마는 그 즈음 이런 일이 있었다. 어버이날을 앞 둔 금요일 이어서 ‘어버이와 먹을 메뉴’를 썼었는데, 마침 그 날 아버지 친구 한 분을 뵙게 되었다.
“낮에 느이 아버지 만났다. 딸래미 원고 자랑하느라 신문을 주더군.” 그리고 이렇게 물으셨다. “너는 어찌하여 아버지를 존경하게 되었느냐? 아니, 어쩜 그리 아버지와 친구처럼 지내느냐?” 연유인 즉, 친구 분께도 스무 살 난 따님이 있는데, 워낙 무뚝뚝한 성격의 아버지를 어려워 한 세월이 길다 보니 이제 와서 부녀가 친해 지기가 어렵더란 말씀이셨다.
그 분은 대기업에서 오래 일하셨던 분으로, 야근과 출장과 과로라는 단어들로 오십대까지 내달리신 분. 따님은 가끔 일찍 귀가하여 숙제도 도와주고, 낄낄 거리며 드라마도 함께 봐 주는 그런 아빠들을 부러워하며 자랐을 터. 그 두 사람의 사이가 이십 년 만에 어떤 방법으로 가까워 질 수 있을까?
♡ 생맥주와 닭튀김
귀가하여, 아빠에게 이 얘기를 해드렸다. 당신 친구를 만났더니 우리의 돈독(?)한 관계를 부러워하시더라. 아빠가 말씀하시기를 “딸래미랑 동네 호프집 가서 맥주 한 잔 하라고 하지 그랬냐?”. 돌이켜 생각해 보니, 나에게 성년이 되어 가는 과정 중 ‘술 선생’이 있었다면 그건 내 아빠였다.
야간 자율 학습을 끝내고 집에 온 지친 고교생 딸에게 캔 맥주 한 잔을 따라 주시던, 대학생이 되었다고 소주를 대작하는 사이로 격상을 시켜 주시던 그런 멋진 아빠. 사실 그렇다.
서로 마음을 열 수만 있다면 맹물 한 잔을 나눠 마셔도 충분하겠지만, 금리와 환율로 머리가 터질 지경인 아빠가 꽃미남 가수를 좋아하는 딸을 데리고 물 한 잔 정도 마음을 터놓기란 쉽지 않은 것이다.
‘호프집’ 이라는 공간으로 함께 간다 함은 ‘동질감’을 느낄 수 있는 하나의 소재를 둘 사이에 끼워 주는 것이다. 학교 앞에서 친구들과 가 보았던 그 곳에서 아빠와 생맥주를 마셔보면 ‘와, 아빠도 사람(?)이구나’ 하고 다시 생각하게 된다.
자식들은, 가끔씩 부모가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고 사니까. 그들도 나와 똑같이 슬픈 일 보면 울고 싶고, 기쁜 일 보면 웃고 싶은 그런 사람들인데, 우리들은 그것을 이따금씩 잊는다.
생맥주를 함께 들이키는 아빠의 마음은 어떨까? 이십여 년 전에 당신이 딸내미 만했던 그 시절 생각에 ‘와, 요 놈이 벌써 어른이 되었구나’라며 내심 놀라기도 할 것이다.
두 사람이 서로를 재발견하게 되는 그 순간, 대화는 시작된다. “아빠도 엠피 쓰리를 아시냐”, “너는 왜 교복 치마를 올려 입느냐” 같은 시시콜콜한 이야기들뿐이어도 그 밤의 감동은 훗날 자꾸 생각이 날 거다.
어렵지 않다. 굳이 집 밖에 나가지 않더라도 빵가루 입혀 튀긴 닭을 안주 삼아 캔 맥주 한잔 기울이면 효과는 마찬가지다.
♡ 소주와 제육볶음
‘너무 앞만 보며 살아 오셨네, 어느새 자식들 머리 커서 말을 안 듣네. 첫째 놈은 사회로 둘째 놈은 대학으로…(중략)…다른 아빠들과의 비교에서 살아 남으려면 더 싸우고 이겨야 해, 아빠는 슈퍼맨이야 얘들아….(후략)’
‘아버지’라는 제목의 노래 가사다. 한국 사회에서 아빠라는 사람들은 모두가 똑 같은 무형의 틀 속에 갇혀서 늙게 된다. 힘들다고 싸매고 누워도 아니 되고, 슬프다고 징징 울면 더욱 아니 되며, 가족들을 굶기면 영락없이 죄인 취급 받는다. 허나, 이 세상 어느 아비가 제 자식을 굶기고 싶어서 그리 될까? 인생의 구비마다 일이 뜻대로 안 되고, 가족들에게 미안한 눈치 보다 또 다시 일이 꼬이고 하는 경우가 다반사인 것이다.
그것은 한 사람의 잘못이 아닌데, 아빠들은 이 모든 상황이 혼자만의 탓인 양 괴로워하며 늙는다. 성공하는 아빠들도 다르지 않다. 내 새끼 잘 먹이고 잘 입히려 죽을 힘 다해 달리다 보면 어느덧 머리가 하얗게 새어 있다. 게다가 처는 처대로, 또 애들은 애들대로 저 잘 나서 이렇게 큰 줄 알지….
이럴 때, 온 가족이 둘러 앉아 얼큰하게 무친 제육에다 소주 한 병 나눠 보면 어떨까? 만취하여 서로 예의를 없애라는 말이 결코 아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인연으로 태어난 사람들이니 오늘 하루가 소중함을 알고 마음을 터놓자는 얘기다.
우리는 사회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친해지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때가 많다. 그 노력의 반만 해도 내 부모와, 내 자식과, 내 형제와 잊지 못할 순간들을 누리게 될 것이다.
아는 어르신이 몸 불편 하셔서 당신 아들의 결혼식장에 못 가게 되었다며 슬퍼하시는 것을 보았다. 아들은 아버지를 원망하고 있었고,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하는데 표현할 방법을 모르는 듯 했다.
아버지가 마음은 벌써 식장에 앉아 혼례를 주관하고 아들을 지켜주고 있음을, 아들은 아버지 없는 식이 싫은 것이 아니라 자신이 고쳐 드릴 수 없는 이 현실이 미운 것임을 서로가 알아 줄 것을 기도한다.
세상 누구도 내 부모, 내 자식만큼 나를 사랑할 수 없으니까.
▲ 칠리소스 닭튀김
닭 안심, 계란 1개, 밀가루, 빵가루, 방울 토마토 3개, 다진 양파 1큰술, 케첩 1큰술, 칠리 소스(혹은 타바스코) 1작은 술.
1. 다진 양파는 설탕, 소금, 식초로 간을 하여 재웠다가 꼭 짜서 물기를 빼 둔다.
2. 1에 방울 토마토와 케?, 칠리소스를 섞어서 냉장고에 둔다.
3. 닭에 소금, 후추로 밑간을 하고, 밀가루, 계란, 빵가루를 묻혀서 튀긴다.
4. 2에 곁들여 3을 낸다. (빵가루 대신 으깬 시리얼을 묻히면 파삭하다)
▲ 제육볶음
목살 600그램, 고춧가루 1큰술, 고추장 2큰술, 설탕 1.5 큰술, 간장, 깨소금, 양파, 파, 후추.
1. 목살에 고추 가루와 고추장, 설탕, 간장을 넣고 고루 버무린다.
2. 1에 양파와 파, 깨소금, 후추를 넣고 다시 버무린다.
3. 팬을 달구어 2의 고기를 한 점 구워서 간을 보고 그대로 한 시간 정도 둔다.
4. 뜨겁게 달군 팬에 3을 굽는다.(설탕 대신 꿀이나 매실청을 넣으면 향기롭다)
푸드 채널 ‘레드 쿡 다이어리’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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