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의 산하가 봄을 아쉬워하고 있다. 하지만 이제서야 봄이 시작되는 곳이 있다. 대관령 일대다. 짧아진 봄을 조금이라도 느긋하게 즐기고 싶은 여행지로는 더할 나위 없다.
대관령은 오대산, 선자령과 이어지는 고원 지대에 자리잡고 있으면서도 탁 트인 시야가 확보되는 곳이다. 해발 1,000m를 넘나드는 고원 평탄지에서 펼쳐지는 초록의 향연이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나 나올 법한 알프스 초원을 가슴에만 담아둘 필요는 없다. 서울에서 3시간 거리에 흡사 그림책 같은 이색 지대가 기다리고 있기에.
♣ 대관령 삼양목장
대관령 삼양목장을 다시 찾은 건 6개월만이다. 순백의 세상은 초록 천지로 변해 있었다. 무딘 눈썰미 탓일까, 도무지 같은 곳이라고는 여겨지지 않는다. 문자 그대로 상전벽해(桑田碧海)다.
600만평의 광활한 초지 사이로 간간이 나 있는 비포장 도로, 고원 위로 우뚝 솟은 풍력 발전기만이 지난 날의 방문을 기억나게 해 줄 뿐.
한 번 들렀던 곳을 같은 방식으로 찾는다면 여행의 묘미는 반감하기 마련. 여행 방법을 달리 했던 것은 그래서다. 4륜 구동 차량을 과감히 포기했다. 대신 ATV(All Terrain Vehicles)를 택했다. 어떠한 조건의 도로에서도 달릴 수 있다는 미니카이다. 4륜 오토바이라고도 불린다. 운전 면허증이 필요 없고, 조작이 쉽다는 것도 장점이다.
우선 워밍업. 목장 입구에 초보자를 위한 원형 코스가 있다. 간단한 장애물 지대도 설정돼 있다. 3~4바퀴 돌면서 감각을 익혔다면, 이제 본격적인 투어에 나선다.
첫 번째 목적지로 4㎞ 떨어진 동해전망대를 잡았다. 전망대로 가는 30여분의 길은 아예 초대형 야외 세트장이라 해도 좋다. 국내 내로라는 영화와 드라마가 촬영됐던 곳이니 왠지 친근한 느낌마저 든다.
지나는 곳마다 영화의 한 장면을 찍어 놓은 팻말이 서 있다. 영화 ‘연애 소설’에서 차태현이 손예진 이은주와 함께 비를 피했던 소나무가 서 있고, 드라마 ‘가을 동화’에서 은서와 준서가 자전거를 타고 달리던 길도 나온다. 풍력 발전기 너머 시원하게 트인 벌판은 ‘태극기 휘날리며’ 전투 장면의 배경이다.
이래 저래 낯선 곳은 아니었지만, ATV를 타고 달리는 기분은 새롭기만 하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동해의 모습은 싱그럽다. 강릉 시내가 한 눈에 들여다 보인다. 곤신봉, 선자령으로 가는 트레킹 코스는 바로 초록 카펫이다.
이왕 내친 걸음, 예서 말 수 없다. 소황병산(1,430m)으로 가는 길이 기다린다. 전망대에서 2단지를 지나 오대산을 가로지른다. 매봉, 노인봉, 소금강 등을 오른쪽으로 두고 달리니 목장의 끝, 소황병산 자락이다.
제법 높은 경사가 이어진다. 가속 페달에 더욱 힘을 준다. 최고 속도인 시속 50㎞에 가까워 질수록 얼굴에 부딪히는 바람은 매워 오지만, 그 쾌감은 4륜 구동 차량의 그것과 비길 바가 아니다. 수 차례 오르락 내리락을 거듭할 끝에 소황병산에 도착했다. 입구에서 출발한 지 3시간만이다. 대관령삼양목장 최고의 전망을 볼 수 있다.
사방을 둘러 봐도 오직 초록 바다만이 존재한다. 눈이 번쩍 뜨이는 광경이다. 동해전망대를 둘러 보는 1시간 코스 3만2,000원, 소황병산코스 8만원(입장료 5,000원 별도). (033)336-0885.
♣ 대관령 양떼목장
새 고속도로가 개통되면 여행지로 가는 방법이 쉬워지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대관령 양떼목장은 정반대다. 찾기 힘든 옛 고속도로와 가깝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도 이 곳을 처음 방문하려면 약간의 수고를 각오해야 한다.
우선 구 영동고속도로를 찾아야 한다.
횡계 IC에서 나온 뒤 용평스키장 방향으로 가다 보면 나오는 표지판, ‘대관령 옛길’을 절대 놓치지 말자. 이 길로 접어 들어 직진하면 구 대관령휴게소를 만난다. 휴게소를 가로 질러 대관령 양떼목장으로 가는 이정표가 보인다.
대관령 삼양목장에 비한다면 양떼목장은 구멍가게 수준이다. 전체 면적은 6만평 가량으로 삼양목장의 100분의 1수준이다. 하지만 나름대로 운치가 있다. 목장에서 뛰노는 주인공이 양이라 자못 이국적이기까지 하다.
입구에서 양들에게 줄 사료인 건초를 구입해야 한다. 2,500원. 입장료인 셈이다. 건초를 받아 먹기 위해 사육장 밖으로 목을 빼꼼이 내는 양들의 모습은 그 간의 수고로움을 잊게 한다.
본격적인 관람은 방목지를 따라가면서 시작된다. 방목지는 목책이 둘러져 있고, 그 주위로 산책로가 나 있다. 관람 시간은 보통 40분 가량 걸린다. 양들은 사람을 봐도 크게 놀라거나 달아나지 않는다.
하지만 너무 가까이 가는 것은 금물이다. 목장에서 기르는 양은 모두 220마리. 복슬복슬한 털을 실룩거리며 초원을 내달리는 모습이 재미있다. 동화속 현실이 거기 있다. (033)335-1966.
대관령(평창)=글ㆍ사진 한창만기자 cm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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