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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무분별한 궁궐 행사 불허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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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무분별한 궁궐 행사 불허하라

입력
2005.05.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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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은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문화유산이다. 시민들의 사랑을 받는 휴식과 교육의 공간이기도 하다. 과거 일제는 우리의 역사와 전통을 상징하는 문화유산을 훼손했는데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궁궐이다.

그런데 최근 궁궐의 특성과 기능에 따라 활용과 보존이 이루어지기보다는 오히려 왜곡의 위험성이 있는 행사들이 잇따라 벌어지고 있어 문제다. 대표적인 행사가 16일 창경궁에서 열린 ‘신사임당의 날’ 행사이다.

신사임당은 궁궐과 무관한 인물이다. 신사임당이 살아서 궁궐이 출입을 했다는 기록을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강릉 오죽헌, 파주 자운서원이 더 관계가 깊은 곳이다. 붓글씨, 글짓기, 그림 그리기 대회, 장기자랑 대회 장소로 궁궐은 적합하지 않다. 또 무분별한 취식 및 음주 행위가 벌어졌고, 기업 판촉물이 전시됐다.

작년 행사 때도 문제 제기를 했는데 올해도 개최가 허가됐다. 작년 경복궁 경회루 검사 대회나 이번 행사처럼 특정한 단체나 기관들의 활동을 위해 이런 식으로 문화유산을 훼손하는 것은 안 된다.

문화재청을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과연 궁궐에 적합한 활용인지 묻고 싶다. 문화재청은 궁원문화재과를 궁능활용과로 개칭하고 적극적인 활용 정책을 펴면서 창덕궁 옥류천, 경복궁 경회루 등 일반 시민들의 관람권 확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렇다고 활용만능주의는 안 된다. 궁궐의 특성과 본래 기능에 근거해 이용이 이루어질 때 문화유산은 그 빛을 제대로 발하고 가치가 높아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궁궐이 권력기관과 특정단체의 행사장소로 전락되거나 연관성 없는 어설픈 행사가 속출하고 있다.

‘장소 사용 허가 규정’도 문제가 있다. 문화재청은 2004년 ‘고궁의 효율적인 관리운영과 활용방안’이라는 연구용역을 주었고 이를 바탕으로 장소 사용 허가 규정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보고서에는 ‘궁궐 본연의 기능과 가치에 무관한 단순 장소 대여의 경우 허가를 제한할 필요가 있다’, ‘궁중 문화행사시에도 성격과 문화재 훼손 위험 여부 등을 고려하여 신중히 허가해야 한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3월 제정된 ‘궁ㆍ능원 및 유적 장소 사용 허가 규정’을 보면 공익 목적의 행사, 글짓기, 그림 그리기, 서예대회를 허가할 수 있다고 명시함으로써 궁궐의 역사, 성격과 무관한 각종 행사가 열릴 수 있는 빌미가 마련됐다.

무분별한 사용 신청을 장소 사용료 징수 규정으로 제한하기보다는 행사 목적과 내용을 중심으로 허가 대상을 규정해 궁궐의 가치를 높이고 보존에 지장이 없는 행사를 유도하는 방향으로 개정해야 한다.

보존 관리에도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 문화유산의 활용은 철저한 보존관리의 틀 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최근 종묘제례 행사 때 벌어진 종묘 정전 부근에서의 취식 및 흡연, 그리고 얼마 전 박석(薄石ㆍ궁궐 바닥 등에 까는 넓적하고 얇은 돌) 훼손 등은 점증하는 문화유산 활용에 비해 관리감독이 소함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문화재청은 본연의 임무를 소홀히 한 채 음악회나 각종 행사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우리는 최근 문화재청이 문화유산의 가치를 높이는 활용과 보존의 조화보다 보여주기식 행사를 통한 관람객 수와 수입 증대를 쫓는 활용만능주의에 젖어 가는 것은 아닌지, 힘 있는 기관에 우리 문화유산을 임대하는 사업자로 전락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천준호 궁궐의 올바른 활용과 보존을 위한 시민모임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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