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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거리 가보셨나요/ 서울 성북구 '아리랑 영화의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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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거리 가보셨나요/ 서울 성북구 '아리랑 영화의 거리'

입력
2005.05.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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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살인범이 되어버린 영진. 일본순사의 손에 붙들린 채 쇠고랑을 찬 몸을 휘적이며 아리랑고개를 넘는다. 입속에서 아리랑 가락이 슬프게 맴돌고 영진은 그렇게 허위적 허위적 아리랑고개를 내려온다.’

1926년에 만들어져 한국 현대영화의 효시가 된 춘사(春史) 나운규(羅雲奎)의‘아리랑’ 피날레다. 원본이 발견되지 않아 확인을 할 수는 없지만 이 장면을 찍은 곳이 서울시 한복판에 자리잡고 있다고 전해진다. 성북구 돈암동 사거리에서 정릉 쪽을 향해 오르막을 걷다가 숨이 찰 때쯤 걸음을 멈추면 그곳이 바로 일명 ‘아리랑 고개’정상이다. 춘사가 ‘아리랑’의 마지막 컷을 영사기에 담았다고 하는 곳이다. 여기서 돈암동 사거리까지 이어지는 1.5㎞의 길을 성북구는 지난해 ‘아리랑 영화의 거리’로 지정했다.

◆ 문화 불모지에 생겨난 오아시스

서울에서 사실 성북구만한 문화 불모지도 없다. 지난해까지 이 일대에는 단 한 곳의 영화관도 없었다. 주민들은 영화나 공연을 보려면 버스와 지하철을 번갈아 타고 발품을 팔아 종로까지 나와야 했다. 영화의 거리가 조성되면서 아리랑고개 정상에 미려한 외관의 건물 2개가 우뚝 세워졌다. 구가 디자인을 공모하고 투자해 만든‘아리랑 시네센터’와 ‘아리랑 정보도서관’이다. 시네센터는 지하2층 지상4층 규모로 각각 211석, 173석, 125석의 상영관 3개를 갖추고 있다. 당초 상업영화보다는 예술영화 상영관으로 특화시키려 했지만 흥행에서 뒤지면 영화의 거리 조성에 문제가 생길 것이라는 지적이 많아 개봉관으로 ‘본색’을 굳혔다.

원래 춘사 유물관으로 사용하기 위해 마련한 1층 전시관은 영화 ‘아리랑’ 관련 자료들과 춘사의 유물 등이 답지되기 전까지 우선 각종 영화제 트로피와 수상작 동영상을 볼 수 있는 공간으로 운영되고 있다. 4층에는 아담한 규모의 미디어센터가 마련됐다. 이곳에서는 시나리오작법에서 편집기술까지 영화제작의 전 과정을 배울 수 있는 교육프로그램이 진행된다. 편집프로그램 자격증 과정도 개설돼‘원스톱’영화교육이 가능하다. 또 개인편집실, 녹음실, DVD제작실 등도 갖춰 주민과 학생이 저렴한 사용료를 내고 이용할 수 있다.

성북구도시관리공단 관계자는 “아리랑 영화의 거리의 중심인 이곳 시네센터에서는 시내 번화가와 달리 호젓하게 영화를 즐기고 각종 영화관련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어 주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시네센터 바로 옆에 위치한 아리랑 정보도서관은 수험생들이 흔히 무거운 책가방을 들고 찾는 독서실 같은 도서관이 아니다. 파스텔톤으로 장식된 내벽이 독서는 물론 영화 감상, 멀티미디어자료 열람 등 다양한 여가를 즐길 수 있게 해준다.

◆‘청동 영화 포스터’의 길

아리랑 영화의 거리는 1999년 정릉지역 재개발과 내부순환로 연결로의 교통량 급증으로 도로 폭을 기존 15㎙에서 30㎙로 넓히면서 이왕이면 ‘아리랑’이라는 지명과 연관해 특색있게 꾸미려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아리랑 시네센터를 나와 언덕길을 내려오다 보면 곧바로 보도를 따라 펼쳐지는 가로 1㎙ 세로 2㎙ 크기의 대형 청동부조들의 행렬이 눈에 들어온다.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즐거운 영화여행이 시작된다. 이 청동부조들은 모두 166개의 국내외 대표적인 영화 포스터를 실물 그대로 재현한 것. 돈암사거리까지 보도 양쪽에 20㎙ 간격으로 설치되어 있다. 영화‘아리랑’이 단성사에서 개봉된 1926년을 기점으로 2000년까지의 작품을 담았으며 남쪽 보도에는 국내영화 포스터, 북쪽 보도에는 외국영화 포스터들이 부조로 되살아났다.

‘국내 영화 60년사의 최고작’(이대근 주연 ‘장마’) 등 포스터가 만들어진 당시의 홍보문구와 주연배우의 특색을 생생하게 잡아낸 그림 등이 눈을 즐겁게 한다. 상가로 이어진 거리 중간중간에는 ‘아리랑 쉼터’라는 이름의 시민휴식공간도 만들어졌다. 나운규의 일생과 영화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담고 있는 조형물이 세워져 있고 최근 영화의 스틸사진 장식으로 덮인 보도가 깔려 있어 주민들의 명소로 자리잡았다.

돈암동에 거주하는 회사원 장모(40)씨는 “영화의 거리가 조성되면서 서울 북부지역에 문화의 오아시스가 만들어지고 있다”며 “앞으로 경전철이 놓이고 영화 관련 업체들이 입주하면 이곳은 대학로 못지않은 문화의 거리로 자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양홍주기자 yang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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