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는 ‘은행’을 가지고 있다. ‘한국일보 이주일 기금’이라는 것을 만들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융자를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전체 금액은 3,000만원인데 무담보 자활기금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꿔주는 신나는조합에 기탁해서 세 개 공동체가 이 돈을 빌려쓰고 있다. 그들이 이 돈으로 자활에 성공하면 돈은 다시 신나는조합으로 돌아오고 또 다시 다른 가난한 공동체들이 빌려쓸 수 있게 된다.
‘한국일보 이주일 기금’은 2002년 폐암으로 작고한 코미디언 이주일씨가 투병 와중에 한국일보에 연재한 회고록인 ‘나의 이력서’가 모태가 되어 만들어졌다. 입성이 좋았던 이주일씨는 죽음을 준비하면서 그가 입던 좋은 옷이나 구두 모자 같은 것을 모아 바자회를 열어 그 수익으로 불치병 어린이들을 돕고 싶어했다.
그러나 건강이 극도로 나빠지면서 바자회를 열기도 전에 돌아가셨다. 그때의 회고록은 ‘인생은 코미디가 아닙니다’라는 책으로 나왔는데 그 책의 수익금을 한국일보사가 전액기부하여 만들어진 것이 바로 ‘한국일보 이주일기금’이다. 이 돈을 신나는조합에 기탁한 것은 영구히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기금으로 이주일씨의 뜻이 기리 전해지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신나는 조합에는 한국일보 말고도 시티그룹과 KT, 조흥은행 등이 기부한 자활기금이 운용되고 있다. 신나는조합처럼 가난한 사람들에게 무담보로 돈을 융자해주는 기관을 마이크로크레딧이라고 부른다. 2005년은 유엔이 선정한 세계 마이크로크레딧의 해이기도 하다.
마이크로크레딧은 가장 가난한 나라 가운데 하나인 방글라데시에서 비롯됐다. 1974년에 대기근이 이 나라에 닥쳤을 때 치타공대학 경제학 교수인 무하마드 유누스가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려면 고리채로부터 독립시켜주는 소액 무담보 대출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주머니돈을 털어서 27달러를 마을 사람들한테 꿔준 것이 출발이었다.
이후 월드뱅크의 후원 아래 시티그룹이 종자돈을 만들어주면서 그라민뱅크라는 이름의 소액무담보대출기관이 1983년 공식 출범하게 되었다. 그 후 전세계 60여개국에 그라민뱅크가 생겨났는데 그 중에는 미국도 포함되어 있다.
신나는조합 역시 1999년 시티그룹의 종자돈 지원으로 생겨난 그라민뱅크의 하나이다. 이어 2003년에는 또다른 소액무담보대출기관인 사회연대은행이 삼성사회봉사단의 기부금 10억원을 종자돈으로 한국에 탄생했다.
은행이란 돈을 꿔준 사람한테서 받는 이자돈을 수익으로, 돈을 맡긴 사람에게 이자를 주며 그 차익을 챙기는 업종으로 알고 있지만 대출시 이자를 전혀 받지 않는 ‘이슬람 은행’이라는 은행도 있다. 가난한 자에게 고리채를 받지 못하게 한 꾸란의 말씀에 근거한 것이다.
이슬람권인 방글라데시에서 시작된 마이크로크레딧은 그러나 연리 4% 정도의 이자를 받는다. 그래도 담보나 보증인이 없으면 돈을 꿀 길이 막막한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크게 숨통을 터주는 구실을 한다.
최근에는 우리나라에서 완전히 새로운 개념의 은행이 태동하고 있다. 대안화폐운동을 펴는 대전의 시민모임인 ‘한밭레츠’가 이자를 대안화폐나 노동으로 갚는 은행을 모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2003년에 전세비를 찾는 회원에게 5,000만원을 십시일반으로 모아 꿔준 뒤 그 이자를 대안화폐로 대부분 받았으며 2004년에는 아들의 카드채를 갚느라 허덕이던 회원 대신 은행에 돈을 갚아주고 훨씬 낮은 이자를 대안화폐로 받았다.
대안화폐는 이 지역에서만 통용되는 지역화폐로 자기가 갖고 있던 중고물품을 내놓거나 일을 하고도 벌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 이자를 노동으로 갚을 수 있게 한 셈이다. 회원들간의 이 같은 무이자 거래가 활성화하면서 최근에는 약간의 규정이 생겨났다.
한밭레츠의 ‘은행’은 대출 이자를 연리 3% 정도로 하되 그 중 절반은 현금으로, 절반은 대안화폐로 갚게 했다. 물론 이 같은 이자는 개인 사정에 따라 전액 대안화페로도 갚을 수 있다.
한밭레츠의 모델은 노동으로 이자를 갚을 수 있다는 점에서 그라민뱅크 모델보다 더 빈자 친화적이다. 한밭레츠 모델도 전세계로 퍼져나가 빈자들을 위한 연대가 더욱 풍성해지길 기대한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