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선에서 우승을 못해도 상관없다. 당신은 이미 우리의 우상이다.”
미국인들이 당찬 미모의 여성 카 레이서에게 보내는 찬사다. 고막을 찢을 듯한 굉음과 시속 350㎞를 넘나드는 엄청난 속도로 질주하며 북미 대륙을 들썩이게 한 주인공은 23세의 대니카 패트릭(홈페이지 www.danicaracing.com).
그는 지난 15일 미국 최고의 자동차 경주 대회인 제89회 인디애나폴리스 500마일(약 800㎞) 레이스 예선에서 4위라는 놀라운 성적을 거뒀다. 이날 기록한 평균 시속 366㎞는 예선 최고 기록이자 우승 후보인 전년도 챔피언 토니 카난(브라질)의 예선 기록을 능가하는 것이었다.
남자들만 우글거리는 험한 자동차 경주계에서 키 159cm, 몸무게 46kg밖에 안 되는 여성 신인의 겁 없는 고속 질주에 세계적인 레이서들조차 입을 다물지 못한다. 1998년 인디 500 챔피언인 에디 치버조차 예선 직후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대니카는 눈부실 정도로 아름답다. 하지만 레이싱 카에 올랐을 때는 여자로 안 보인다. 그저 ‘16번(패트릭의 차 고유 번호)이 오늘도 쾌주하는구나’ 하고 감탄할 뿐이다”라고 말했다.
신데렐라 탄생은 예고된 것이었다. 패트릭은 10살 때 카트(소형 경주용 자동차)를 타기 시작해 5년 만인 1997년 카트세계챔피언십에서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이후 직업 선수로 나서 2000년 바비 라할 레이싱팀과 전속 계약을 맺었다. 지난해 도요타_애틀랜틱 챔피언십에서 3위를 차지하는 등 최고의 자리에 한발한발 다가서고 있다.
그의 무기는 미모가 아니라 실력이다. “나는 운 좋은 신인이나 예선을 통과한 그저 그런 여성 레이서가 아닙니다. 우승 후보로서 남자 챔피언들과 당당하게 겨룰 것입니다.”(인디애나폴리스 신문 인터뷰)
자신과 팀의 홍보를 위해 비키니 사진 촬영조차 마다 않는 적극적인 성격도 유명세를 높였다. 그는 스스로를 “매우 진지하고 섬세하며 집중력 높은 레이서이자 청바지보다 치마를 즐겨 입는 섹시한 여자”라고 소개한다. 그런 탓인지 남성보다 여성 팬들이 더 열광한다. 그가 경기장에 나타나는 순간 여성 팬들의 환호가 일제히 터져나올 정도다. 선배 여성 레이서인 린 제임스는 “대담한 레이서이자 여자로서의 매력도 제대로 활용할 줄 아는 친구”라고 평했다.
깊이 눌러 쓴 모자 아래 도전적인 눈매가 이글거리는 패트릭에게도 든든한 ‘빽’이 있다. 16살 연상인 약혼자 폴 호스펜서다. “물리치료사인 폴 오빠는 요통을 풀어주는 것은 물론 정신적 혼란까지 치료해 줍니다. 유명세로 겪는 불상사로부터 보호해 주는 것도 듬직한 폴 오빠의 역할이지요.” 두 사람은 오는 11월 결혼식을 올릴 계획이다.
패트릭은 29일 최종 결선에서 예선 성적에 따라 1, 2위 차량에 이어 두 번째 출발선에 서게 된다. 예선 1차 전에서 차가 뒤집힐 뻔하는 바람에 불리한 위치에서 뛰게 됐지만 우승을 향한 집념은 오히려 더 강렬해졌다. “29일 결선에 특별히 긴장하지는 않아요. 여느 경기보다 좀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할 뿐입니다. 나는 훌륭한 팀에서 실력 있는 동료들과 함께 뛰고 있습니다. 여전히 배우고 있고, 앞으로도 많은 것을 배울 것입니다.”
그는 이미 우승 여부에 상관없이 올해 인디 500의 간판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팬들은 내심 열흘 후 ‘여성 슈마허(전설적인 독일의 현직 카 레이서)’가 탄생하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김명수 기자 lece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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