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식물인간 테리 샤이보의 삶과 죽을 권리를 놓고 치열한 공방전이 일었을 때 나는 미국 선거전의 ‘뜨거운 감자’가 하나 더 늘었구나 하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선거철이면 그 어느 정치인도 낙태와 동성애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밝히지 않고는 선거전을 치를 수 없었다. 이제 이에 더하여 죽을 권리에 대한 자신들의 입장까지 유권자들에게 밝혀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1980년 대 초 내가 미국에 도착한 후 다소 의아스럽게 느꼈던 것 중의 하나는 낙태를 둘러싼 죽기살기 식의 공방전이었다.
사실 한국에 사는 동안 이 같은 이슈에 접해 본 적이 없었던 나로서는 태아의 인권에까지 사회적 관심을 기울이는 그들의 여유가 부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개인의 자유와 선택을 금과옥조로 여긴다는 선진국의 행태 치고는 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가 1973년에야 연방대법원의 판결로 미국에서 낙태가 합법화_그것도 임신 초기의 경우에 한하여_되었다는 것을 알고는 적잖이 놀랐다. TV나 영화에 비친 자유분방한 모습과는 전혀 다른 얼굴을 한, 또 하나의 미국이 거기 있었다.
그 다른 얼굴의 미국, 즉 미국의 보수세력을 한 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굳이 몇 가지 공통점을 추려본다면 우선 이들은 될수록 정부의 간섭을 배제하는 작은 정부를 지향한다.
또 다수는 기독교 근본주의자들로 공립학교에서 기도가 폐지된 것을 개탄한다. 복지 예산의 확대는 무책임한 가장을 양산할 뿐이라 믿으며, 악의 세력과 대적하려면 국방 예산의 확대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낙태 합법화는 도덕적 해이를 가져올 뿐이라고 확신했던 이들이 1973년 연방대법원의 판결에 분노를 터뜨렸음은 물론이다. 그리고 이를 눈치챈 공화당의 책략가들은 발 빠르게 낙태를 정치 이슈로 부각시켰다.
경기 부양책 등 딱딱한 논쟁보다는 정적을 무자비한 ‘생명 파괴자’로 몰아세우는 일이 유권자들의 감성을 쉽게 자극했고 이 전략은 80년 로널드 레이건 정부 집권에 커다란 역할을 해냈다.
그 후 낙태와 동성애, 가정의 가치 등을 둘러싼 도덕적 이슈가 선거 때마다 단골 메뉴로 등장했고, 결국 부시의 재선에도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공화당 의원들이 부활절 휴가를 반납하면서까지 샤이보 살리기에 나섰던 것은 이처럼 다분히 정치적인 동기가 깔려 있다.
낙태건 안락사건 이면에 복잡하게 얽혀 있는 문제들을 따져보기보다는 “생명의 파괴자”로 단순화시켜 몰아가는 일이 선거 책사들에게는 훨씬 구미가 당기는 일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민주당은 과거보다 훨씬 불리한 입장에 있다.
한수민 미국 시카고 국제로타리 세계본부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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