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향수를 경계하라.” 한국 근현대사 재평가 움직임이 활발하지만 박정희, 또는 박정희 시대 만큼 극명하게 평가가 엇갈리는 장면도 드물다.
최근 명지대 국제한국학연구소가 ‘박정희와 그의 시대’를 주제로 잡아 15회로 예정하고 매달 한 차례씩 열고 있는 콜로키엄도 박정희를 ‘독재자’와 ‘경제개발의 영웅’으로 교차 조명하는 현장이다.
계간 ‘창작과비평’이 여름 호에서 박정희 재평가를 쟁점 기획으로 다뤄 눈길을 끈다. 민족문학론을 제창하며 과거 반독재 지식인 진영의 중심에 섰던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가 박정희의 공과를 짚으면서 경제개발의 업적을 인정해 줘야 한다고 지적한 대목도 있다. 그러나 백 교수의 글의 전체적 취지를 비롯해 ‘야생초 편지’로 유명한 황대권 생태공동체운동센터 대표, 조석곤 상지대 교수의 글은 박정희 향수에 젖어 들지 말 것을 강조하고 있다.
백 교수의 글을 다소 느닷없이 여길 수 있는 것은 “‘주식회사 대한민국’의 강력한 최고경영자로서 박정희가 지녔던 여러 장점에 대한 주장을 얼마든지 받아들일 용의가 있다”든지, “굳이 박정희식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틀 안에서 성장을 하고 경쟁력을 추구하는 한 일정한 환경파괴와 인간성의 훼손이 불가피하다”고 언급한 대목 때문이다.
하지만 비전문가임을 전제하고서 백 교수가 ‘박정희 시대를 어떻게 생각할까’라는 글을 쓴 것은 “기본적인 제반 권리에 대한 무관심, 인간의 고통과 고난에 대한 무감각, 대화와 타협을 통한 문제해결 방식에 대한 거부감, 그리고 ‘잘 살아보세’라는 걸인의 철학 이상의 어떠한 개인적 또는 공동체적 철학에 대한 무지 등을 고스란히 내장하고 있는 것이 박정희의 향수”이며 그 “박정희에 대한 향수야말로 박정희 시대 최악의 유산에 속한다”는 것을 지적하기 위한 것이다.
백 교수는 “민주개혁 없는 경제개발의 추구는 현실사회주의 나라들에서처럼 결국 경제의 장기적 침체와 쇠퇴를 낳거나 이란의 이슬람혁명에서처럼 원리주의적인 신정(神政) 체제로 귀결하기 십상”이라며 “오늘의 정치 지도자들에게 어떤 문제점이 있건 제2의 박정희가 해결책이 못 되는 것만은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조석곤 교수는 “1960년대 후반 서구의 ‘풍요의 세대’에 비견할 정도로 자유로운 세대라 할 수 있는 요즘 신세대들은 박정희에게서 성장전도사(비전), 청렴성, 당당함 등의 코드를 선택적으로 인식하고, 어느덧 아버지 세대가 되어버린 산업화ㆍ민주화의 두 기성세대에 자신 있게 반감을 표시하는 박정희 신드롬의 주된 감염자들”이라고 지적했다.
황대권 대표는 “노무현 정부가 박정희식의 획일주의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제동을 걸고 있으나 경제지상주의에 대해서는 그것을 답습하는 것 외에 다른 방도를 갖고 있지 못한 듯 하다”며 “새로운 가치와 문화를 담아둘 수 있는 그릇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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