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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의 길위의 이야기] 외양간의 구유를 추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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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의 길위의 이야기] 외양간의 구유를 추억하며

입력
2005.05.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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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 구유는 말이나 소의 먹이통이다. 아름드리 통나무를 자귀로 쪼아 배를 만들 듯 속을 파서 말과 소의 밥통을 만든 것이다. 어릴 땐 시골에 집집마다 구유가 있었다. 당장 소가 없어도 언제 소가 들어올지 모르는 일이기에 부엌 옆에 작은 외양간을 만들고 거기에 구유를 놓아 두었다.

어릴 땐 우리 손으로 소꼴을 베어 구유를 채워주었다. 풀이 시들어 꼴이 없는 가을과 겨울엔 가마솥에 여물을 끓여 그것을 구유 가득 퍼주었다. 그리고 틈틈이 짚단을 풀어 주었다.

그런 구유가 이제 시골에서는 거의 사라지고 없다. 축사마다 철판으로 만든 구유를 쓰거나 시멘트로 만든 구유를 쓴다. 그리고 옛날 구유는 모두 도시로 나와 제법 모양을 갖추고 사는 집 거실의 유리 탁자 받침을 하거나, 큰 음식점의 장식품 노릇을 하거나, 식탁 받침 노릇을 한다.

어린 시절엔 구유를 보는 것만으로도 그것이 내 일거리인 것 같아 참 지겨웠다. 그러나 지금은 보고 싶어도 보지 못한다. 이제는 그것이 구유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의 집에 가야지만 구유를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럴 때 나는 어린 시절의 내 삶과 추억들이 모욕 받는 것 같아 참 싫어진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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