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개막한 제 58회 칸 영화제가 중반을 넘어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경쟁 부문에 오른 21편 중 3분의 2 이상이 이미 상영됨에 따라 벌써부터 수상작 예측이 분분하게 나돌고 있다.
개최지인 프랑스는 그 어느 때보다도 자국 영화의 황금종려상 수상 가능성에 한껏 고무돼 있다. 지금껏 상영된 경쟁 부문 진출작 가운데 프랑스 영화 ‘히든’(Hidden)이 가장 큰 주목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는 1987년 ‘사탄의 태양 아래’ 이후 황금종려상과 인연이 없었다. ‘히든’은 칸 영화제 데일리지 평점에서 압도적 1위에 올라 있고, 스크린 인터내셔널은 이 영화에 3.3점(최고점수 4.0)을 줬다. 실제로 평론단 11명은 만장일치로 ‘히든’을 황금종려상 감으로 꼽았다. ‘라 필므 프랑세’의 평론가 8명 중 5명도 ‘히든’을 점 찍었다.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프랑스에서 활동하고 있는 미하엘 하네케 감독이 연출하고 줄리엣 비노쉬, 다니엘 오퇴유가 주연을 맡은 이 영화는 ‘알제리’라는, 프랑스에서는 지극히 논쟁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다. TV 진행자 조지가 어느날 알제리 출신 이민자에 대한 탄압을 다룬 비디오 테이프를 받는 것으로 시작되는 이야기다.
130여년에 걸친 프랑스 식민통치와 알제리 민간인만 100만 명 이상이 숨진 알제리 전쟁 등을 겪으며, 프랑스와 알제리 간의 애증은 미국과 베트남의 그것에 비견될 정도다. ‘버라이어티’지의 데보라 영은 “역사에 대한 반성은 프랑스 만의 문제는 아니다. 유럽이나 미국 역시 지금의 이라크에 대해 져야 할 책임이 있다. 이 영화는 그 점을 환기하고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히든’과 함께 덴마크의 라스 폰 트리에 감독 작품으로 미국에 대한 풍자를 담고 있는 ‘만달레이’,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의 ‘폭력의 역사’ 등 역사적 관점을 다룬 영화들이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 이번 칸 영화제의 두드러진 특징이다.
반면 당초 이들 작품과 치열한 경쟁을 벌일 것으로 예상됐던 아시아 영화는 뜻밖의 혹평으로 의기소침해 있는 분위기다. 경쟁 부문에 오른 5편의 아시아 영화 중 고바야시 마사히로 감독의 ‘배싱’(일본), 두 치펑 감독의 ‘흑사회’(홍콩), 왕 샤오슈와이 감독의 ‘청홍’(중국) 등 3편이 상영됐다.
스크린 인터내셔널 평점에서 ‘배싱’은 고작 1.5점, ‘흑사회’는 2.1점에 머물렀다. ‘청홍’도 17일 시사회 도중 50여 명이 중간에 빠져 나가는 등 별 볼일 없는 반응을 얻었다.
특히 이라크 포로로 잡혔다 풀려난 일본 여성이 고국에서 외면당한다는 줄거리를 담은 ‘배싱’은 참신한 소재에도 불구하고 “왜 일본이 그녀를 거부하는 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평을 받았다.
‘필름 크리틱 앤 오서’(Film Critic and Author)지의 마크 커즌스는 “아시아 영화가 당초 생각했던 것만큼 높은 수준이 아니어서 놀랐다”며 “서구 영화와 비교해 볼 때 아무래도 아직 기반이 약하고 덜 성숙한 것 같다”는 평을 내 놓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자 아시아 영화를 고르는 칸 영화제의 안목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까지도 나오고 있다.
이제 남은 작품은 허우 샤오시엔 감독의 ‘최호적시광’(대만)과 홍상수 감독의 ‘극장전’ 뿐. 특히 경쟁부문에 진출한 아시아 영화 중 가장 마지막으로 19일 공개되는 ‘극장전’이 아시아 영화에 대한 실망을 희망으로 바꿀 수 있을지 기대가 모아지고 있다.
칸=최지향기자 mist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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