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개월 만에 남북 당국간 대화의 물꼬를 튼 차관급 회담이 삐걱대고 있다. 16일부터 이틀로 예정됐던 회담일정은 결국 18일 새벽까지 이어졌지만 공동보도문을 내는 데는 실패했다. 쟁점 의제에 대한 합의가 쉽지 않아 보여 19일 개성에서 열리는 나흘째 회의 전망도 불투명하다.
남과 북은 애초부터 이번 회담에 임하는 목표가 달랐다. 남측은 이번 기회에 남북관계를 정상화하는 동시에 최대 현안인 북핵 문제에 대해서도 해결의 단초를 마련한다는 입장이었다. 장관급 회담 재개 일자를 확정하고 북핵 문제와 관련된 합의 사항을 공동보도문에 담는다는 게 1차 목표였다.
반면 북측은 ‘절박한 사안’인 봄철 시비용 비료지원을 이끌어내고 향후 실무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남북 당국간 채널을 확보하는 선에서 회담을 마무리하고자 했다. 그래서 북측은 장관급 회담 재개에 원칙적으로 동의하면서도 ‘조속한 시일 내’ 같은 애매한 문구로 장관급 회담을 하지 않고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었다.
핵 문제와 관련 ‘남북이 풀 문제가 아니라 북미간에 해결돼야 할 사안’이라는 입장을 기본으로, 이번 회담에서는 언급 자체를 회피했다. 결국 남북의 동상이몽(同床異夢)은 사흘 동안의 회담에서 그대로 드러났고 양측은 평행선을 달릴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19일 회담에서도 이 같은 간극이 좁혀질 여지가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가장 큰 쟁점은 북핵 문제. 남측의 입장은 완강하다. 반기문 외교부 장관은 18일 정례 브리핑에서 “북한의 6자회담 복귀가 조속히 이뤄져야 하고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노력이 경주돼야 한다는 점이 차관급 회담 공동보도문에 포함돼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또 고위 당국자들이 잇따라 “한반도 비핵화 없이는 민족공조도 없다”고 언급하는 부분도 심상치 않다. 북핵 문제 해결 기미가 없을 경우 남북간 협력이 어려울 수도 있다는 압박성 발언으로 들리기 때문이다.
북측은 불편한 심정을 감춘 채 회담석상에서는 철저한 무시 전략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러나 남측은 공동보도문에 최소한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남북 공동의 노력’ 같은 문안을 담는다는 복안이어서 남북간 힘겨루기가 불가피해 보인다.
장관급 회담 개최 일자 확정과 추가 비료지원은 맞물린 사안이어서 남북의 절충이 필요하다. 또 이산가족 상봉행사 재개, 경의선 철도 시범 운행 등의 남측 제의에 대해서는 북측이 적극적인 협의 자세를 보이지 않고 있지만 남측은 북측의 태도 변화를 기대하고 있다.
정상원 기자 orn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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