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산이 두 번 넘어 바뀌는 4반세기가 지났으나 ‘5월 광주’의 아픔은 계속되고 있다.
1980년 5월을 겪었던 광주 시민들의 가슴 속에는 그때의 상흔이 생생하게 남아 있는데 아쉽게도 당시 현장은 무분별한 도심 개발과 무관심 속에 옛 모습을 잃어가고 있다.
광주시내에는 계엄군에 맞서 민주화와 군부독재 타도를 외쳤던 역사의 현장 25곳이 ‘5ㆍ18사적지’로 지정됐다. 그러나 25주년을 맞은 몇몇 현장은 당시 흔적은 물론 기억조차 되살릴 수 없을 정도로 바뀌었고, 또 사라질 위기를 맞고 있다.
당시 용봉천을 사이에 두고 학생과 계엄군이 치열하게 대치했던 이 곳은 25년이 흐르면서 그 모습이 완전히 변해버렸다. 용봉천 복개와 함께 정문 앞 다리가 사라졌고, 96년 정문이 신축돼 당시 투쟁 상황과 기억을 되새길 만한 요소가 사라졌다.
현재는 초라한 사적지 표지석만 당시의 현장임을 알리고 있다. 이 때문에 전남대 정문을 복원해 5월을 경험한 세대들에게는 과거 기억을 되살려주고 후세에는 5ㆍ18과 민주화 과정을 체험할 수 있는 역사의 현장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 시민 박동희(45ㆍ광주 북구)씨는 “5월 전남대를 생각하면 그때의 함성이 들리는 듯한데 현재 모습은 너무 바뀌어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민중항쟁 당시 시민군과 계엄군 사이에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졌던 광주역 2004년 4월 고속철도 개통을 계기로 건물을 재보수해 옛 모습을 잃었다. 당시 역 앞에 있던 분수대도 사라졌고 항쟁 이후 시민들의 집회장소로 활용됐던 대규모 광장은 소나무 등이 심어진 소공원으로 바뀌었다.
5ㆍ18사적지가 아예 사라진 곳도 많다.
수 많은 시민들이 고초를 받았던 영창과 조사실, 법정 등은 5ㆍ18자유공원에 복원돼 있다.
전남도청과 상무관 등 주요 사적지도 훼손되거나 사라질 위기를 맞고 있다. 특히 5ㆍ18민중항쟁의 핵심 사적지인 전남도청 10월 전남 무안군 남악신도시로 이전할 예정이어서 상당 부분 원형 훼손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전남도청은 당시 계엄군에 맞서 끝까지 항쟁하다 산화한 시민군 지휘부가 설치됐던 곳으로 해마다 기념일을 전후해 민중항쟁 전야제와 정신계승대회 등이 열리는 주무대이기도 하다. 전남도청 부지에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들어설 예정으로 현재 토지보상이 진행 중이다.
시민군과 계엄군 간 교전으로 수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던 광주교도소는 시 외곽으로 이전이 확정된 상태다. 양민 학살이 자행됐던 주남마을과 진월ㆍ송암동 등 몇몇 사적지는 표지석만 덩그러니 자리를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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