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자 명단을 실어도 될까?” 일본 언론들이 대형 사고 피해자 등에 대한 보도를 놓고 고민에 빠졌다. 지난달 1일 개인정보보호법이 전면 실시된 이후 취재원들이 언론에 대해 과잉반응을 보이고, 기자들도 어디까지를 공개해야 하는지 혼란을 겪고 있는 것이다.
지난달 25일 발생한 JR 서일본 열차 탈선 충돌 사고에선 이 같은 모습이 극명하게 드러났다. 107명이 사망하고 540명이 부상한 대참사를 접한 일본 언론들은 사상자 이름을 실명으로 보도한다는 원칙을 세웠으나 결국 관철시키지 못했다. 사고 처리 당국이 사상자 중 일부를 익명으로 발표한데다가, 사상자 가족으로부터 이름을 빼라는 강력한 요구를 받았기 때문이다.
특히 사상자들이 후송된 병원에서는 개인정보보호법을 들어 피해자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다. 결국 주요 언론들은“슬픔에 빠진 가족들을 배려하지 않을 없다”며 일부 희생자의 명단을 보도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무리 개인정보보호법이 시행 중이라도 사고를 수습하는 당국이 익명으로 발표한 것과 병원이 정보 제공을 거부한 것은 잘못이라는 논란도 일어났다. 사회적으로 커다란 충격과 슬픔을 안긴 이번 사건의 전모와 친지의 안위를 궁금해 하는 다른 독자들을 위해서 정보를 제공하는 게 언론과 정부의 사명이라는 주장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익명화’ 현상이 관행으로 정착할 경우 취재ㆍ보도활동의 축소는 물론 언론의 보도 규제로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하고 있다.
개인정보보호법은 개인의 정보를 유출한는 기업에 대해 관계 장관이 시정을 명령할 수 있고, 이에 따르지 않으면 기업의 대표자를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법이다.
우여곡절 끝에 최근 전면 시행된 이 법은 생래적으로 언론이 추구하는 ‘표현의 자유’와 대립하는 측면을 갖고 있었다.
2001년 이 법안이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당시는 “명백한 언론 자유의 침해”라는 비판이 쏟아져 결국 폐안된 바도 있다. 이후 일본 정부는 “순수한 개인의 정보 보호만을 목적으로 한다”고 ‘맹세’하며 수정법안을 제시해 법안이 성립할 수 있었다.
도쿄=김철훈특파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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