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 통일부장관 등 정부 당국자들과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의 16일 연쇄회동은 남북회담에 대한 미묘한 시각차가 드러나는 자리였다.
대표적으로 정 장관과 힐 차관보의 면담이 그랬다. 남북 대화와 북핵 문제의 강한 연계를 원하는 미국과 두 사안의 병행 추진을 상정하는 정부의 속내가 노출됐다.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이 16일 외교부 청사에서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동아태담당 차관보를 만나 악수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정 장관은 "개성의 차관급 회담이 남북관계 정상화는 물론 6자회담 재개에 긍정적 분위기를 조성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개성 회담이 6자회담의 촉진제가 되도록 노력한다는 말이지만, 두 사안을 연계하겠다는 뜻은 담고 있지 않았다.
그러자 힐 차관보는 "남북회담을 지지한다. 하지만 6자회담 관련국들의 목표는 한반도 비핵화이며 이러한 목표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북대화도 현 단계의 목표인 북핵 문제 해결과 연계돼야 한다는 점을 우회적으로 밝힌 것이다.
물론 힐 차관보는 정 장관과의 회동에 앞서 반기문 외교장관과 만나 "인도적 차원의 비료 지원이 필요한 곳에 적정하게 지원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이해를 표시했다. 하지만 '필요한 곳에 적정하게'라는 말에는 과도한 지원은 바라지 않으며 신중을 기해 달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사실 힐 차관보는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대북 비료 지원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남북회담이 10개월 만에 어렵게 성사됐고, 비료가 북한 주민의 식량난과 직결된 인도적 사안이라는 점에서 미측이 입장을 다소 누그러뜨린 듯하다.
그러나 북핵 문제에 무게를 두고 남북대화를 바라보는 미국의 시각은 여전하다. 15일 스티븐 해들리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북한 핵실험 증거를 언급하고, 뉴욕타임스가 대북 봉쇄에 대한 한미간의 입장차를 보도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 힐 "5·18당시 美역할 오해 알아"
한편 힐 차관보는 16일 주한 미국 대사관 인터넷 커뮤니티인 'Cafe USA'에 올린 글을 통해 "나는 아직까지도 한국 국민 사이에 1980년 당시 미국의 역할에 대한 오해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서 "지난해 광주묘역을 방문했을 때 느꼈던 깊은 슬픔과 존경심을 다시 한번 떠올린다"고 밝혔다.
이영섭 기자 youn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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