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한 작품 뒤에 가려진 보석 같은 곡들을 찾아내는 일은 예술가의 중요한 의무다. 그것이 바로 클래식이 만들어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걸작으로 평가 받거나 세상에 화제가 되는 곡도 있지만, 진정한 가치의 평가는 평론가들 이전에 아티스트가 인정하는 작품이 더 의미가 있다.
내가 현악사중주를 처음 시작할 때쯤 엔 다른 사람들과 아는 곡들이 거의 똑 같았다. 아무리 바이올린 전공자라고 해도 사중주에 큰 관심이 없었기 ??문에 국정교과서에 나오는 곡들만 이름을 들어본 정도였다.
슈베르트의 ‘죽음과 소녀’, 드보르작의 ‘아메리칸’, 스메타나의 ‘나의 생애’ 정도랄까. 자세한 멜로디는 잘 몰랐고, 그것도 제목이 있었기에 아는 정도였다. 내가 이렇게 된 데는 이런 곡들만 연주하는 연주자들 책임도 있다. 사실 이런 곡들은 진짜 명곡이기에 유명한 것은 당연하지만 말이다.
교향시 ‘나의 조국(From my country)’으로 유명한 체코의 작곡가 스메타나는 두개의 현악사중주를 남겼다. 1번 ‘나의 생애(From my life)’는 인상적인 제목 덕분에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진정한 걸작은 1번에 가려진 제목 없는 동생 ‘2번’이다. 이 정신 착란적인 작품은, 당연히 그가 정신 착란일 때 썼다. 스메타나가 말년에 정신 이상인 상태로 죽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지는 않다. ‘2번’은 ‘나의 생애 속편’ 정도라고 해도 무리는 없겠다.
의사는 (잔인하게도) 작곡가에게 더 이상 작곡하지 말라고 경고한 상태였다. 그러나 그는 몰래 작곡을 하기 시작했다. 주위 사람들이 모르게 하다 보니 하루에 몇 마디씩 밖에 만들지 못했다.
그가 편지에는 "나는 이 작품을 반드시 끝내고야 말 것이다"라는 의지를 표현했는데, 이 글이 그가 제정신일 때 마지막 남긴 글이다. 작곡가 자신도 곡의 난해함과 생소함에 대해 우려할 정도로 파격적인 작품이 되었으며, 최후의 대작으로 남았다.
훗날 쇤베르크같은 작곡가들에 의해 이 곡의 가치가 재조명되기 시작한다. 최근엔 그 유명한 스메타나 현악사중주단 할아버지들이 악보를 보지 않고 외워서 연주한 DVD도 나왔다.
이런 작품을 발견할 때의 희열은 엄청나다. 아마 이것은 예술가 이전에 탐구자의 기쁨인 것 같다. 어렸을 땐 앞선 세상에서 모든 발명과 발견이 이루어진 것 같지만, 문화의 개척자들은 새로운 보물들을 찾아내고 있다. 살아 볼만한 가치가 있는 세상이다.
현악사중주단 콰르텟엑스 리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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