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테 알리기에리(1265~1321)의 장편 서사시 ‘신곡(神曲)’은 단순히 한 권의 고전이 아니라, 중세를 갈무리하고 근대 르네상스의 물꼬를 튼 거대 정신이다.
이 책은 로마시인 베르길리우스와 베아트리체의 안내를 받아 7일 동안 지옥과 연옥, 천국을 여행하며 경험한 바를 고백체 형식의 3운구법(韻句法) 시에 담은 것이다.
매 편 33곡(canto)에 서곡을 합쳐 총 100곡으로 구성된 신곡은 고딕건축물을 연상케 하는 형식상의 정교함과, 그리스 로마 고전, 당대의 신학 천문학 윤리학 등 지성사적 유산을 아우른 심오한 내용으로 우뚝한 작품이다.
이 작품의 이탈리아어판을 원전으로 한국외대 한형곤(62) 부총장과 제자인 부산외대 박상진(43) 교수가 각각 완역본과 해설판(서해문집)을 냈다. 학부시절 한 부총장의 수업 ‘신곡 강독’을 수강했고, 대학원 때는 담당 조교이기도 했던 박 교수가 책 출간 인사차 15일 오후 한국외대 캠퍼스를 찾았다.
박: 선생님께서 78년에 내신 이탈리아어판 완역본(삼성출판사)이 절판돼 아쉽던 차에 다시 작업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한: 일어, 영어판을 중역한 것들은 더러 있지만, 마음에 안 드는 대목도 많고 누락된 부분도 더러 있어서 말이야. 기존 번역본과 사페노 원전을 놓고 다시 어휘를 고치고 오역 손 보는데 무려 1년 반이 걸렸네. 그래도 완전한 번역이라고 보기는 어렵지. 나중에 보다 완벽한 개역판을 내시게.
박: 고전이라는 게 원래 시대마다 다르게 번역하고 새롭게 읽혀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한: 그 시대의 언어와 호흡으로 새로운 가치를 찾아가는 노력이 중요하지.
박: 특히 신곡은 읽었다는 사람들은 꽤 있지만 끝까지 읽은 사람은 별로 없고, 제대로 읽은 사람도 드물더라구요.
한: 워낙 깊지 않나. 주석이 본문의 70% 이상이니 말이야. 세익스피어의 희곡 한 권을 제대로 읽으면 책 스무 권을 읽는 효과를 본다지만 단테는 한 술 더 뜨지.
박: 신곡이 제대로 읽힐 수 있는 형식을 고민한 결과가 부끄럽지만, 이번 책입니다. 보티첼리며 구스타프 도레 등 대가들의 신곡 도판을 많이 썼고 전체를 산문으로 풀었습니다.
600여년 세월을 이기고 동서양의 벽을 뛰어넘은 가치와 글맛을 살리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나저나 선생님은 신곡 100곡 가운데 뭐가 가장 마음에 드십니까.
한: 지옥편 5곡 파올로와 프란체스카의 이야기네. 단테의 여인 베아트리체가 연상되거든. 당시 시인들에게는 프랑스 기사도문학에서처럼 문학의 정수와 같은 여인들이 있었지. 보카치오의 ‘피암메타’나 페트라르카의 라우라처럼 말이지. 그네들에게 여인은 플라톤의 이데아와 같은 존재야.
박: 수업 때 하셨던 말씀이 생각나네요. 베아트리체가 인간과 신을 매개하는 천사적 이미지라면, 라우라는 보다 인간적이면서 뮤즈와 같은 인물로 등장하고, 피암메타는 세속적인 여인상이라고 하셨죠.
한: 그들 르네상스 3대 작가가 라틴어가 아니라 이탈리아 방언으로 작품을 쓴 것도 못 배운 사람들, 여인들도 읽게 하려는 의도였을 거야.
박: 그랬기 때문에 당대 서민들의 삶과 고민이 보편 가치로 인정 받아 불멸의 고전 반열에 오른 것이겠지요. 저는 신곡 가운데 천국편 마지막 장이 좋습니다.
온 몸이 해체돼 빛이 되는 상태, 유한자의 몸을 벗고 무한자에게 다가서는 상태. 결국 단테가 그린 신의 세계란 단테 자신의 세계이며 하느님의 구원 역시 자신의 상상으로 형상화한 구원이지 않겠습니까. 이 시대 구원의 참된 의미를 생각하게 합니다.
한: 그래서 신곡 전체를 상상에 의한 여행기라고도 하잖아. 지옥편은 공간적 이미지나 죄와 벌의 생생한 질감을 보건대 조각의 세계이고, 연옥은 그림의 세계, 시편으로 이어가는 천국편은 모순 없는 조화 곧 음악의 세계라고도 하지. 즉 신곡은 예술 여행기이기도 해.
박: 만일 단테를 만나신다면 무슨 질문을 하시겠어요? 전 그의 신곡에 담긴 기독교 중심주의나 유럽중심주의, 남성중심주의를 따져 묻고 싶습니다.
한: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이 1200년대 말에야 나오잖아. 원제는 ‘세계의 기술(記述)’이었고. 단테는 당시 동양이라는 개념 자체를 몰랐을 거야. 유럽이 곧 세계였던 거지. 난 단테에게 자유의지의 문제를 묻고 싶어. 신이 부여한 최소한의 사랑, 그 자유의지가 신의 섭리와 어긋남이 곧 악이요, 죄인 셈이지. 그 ‘단순한’ 문제를 왜 이토록 골치 아프게 썼는지 묻고 싶어.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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