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이에도 시를 읽다가 갑자기 가슴이 먹먹해질 때가 있다. 있다. 고향 후배의 시여서 시 속의 풍경이 내 추억 속의 풍경처럼 바로 떠올라서인지도 모른다. 김창균 시인의 ‘녹슨 지붕위에 앉아 빗소리를 듣는다’는 시집이다.
‘어느 먼 옛날에 한 목수가 지붕을 못질할 때 못질한 부분의 상처가 이렇게 덧날 줄 알았을까. 밤이 되면서 이 상처 속으로 별들이 들어가고 가끔 빗물이 스며들어, 이윽고 사람 떠난 구들장 위엔 꽃들이 조그만 얼굴을 내민다.’
나는 이런 빈집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들이 떠난 사연도 잘 알고 있다. 우리 옆집도 그랬고 뒷집도 그랬다. 한때는 봄이 되면 마당 한켠에 멍석을 펴고 부부가 함께 감자 눈을 따던 집들이다.
‘잘 드는 칼을 골라 감자 눈을 딴다. 눈 아닌 것은 쓸모 없다. 눈 가린 것도 쓸모 없다는 듯 둥근 것들 사정없이 잘려나간다.’ 이런 대목을 읽으면 마치 세상 모습이 이런 것 같아 생감자라도 깨문 듯 마음이 아려온다. 내가 대관령에 올라가 농사를 지었던 ‘19세’ 속의 추억도 그 속에 다 들어 있는 듯하다. 감자 눈 속에 그 시절의 푸른 하늘까지 다 보이는 듯하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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