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위협이 닥치면 맞서 싸우거나 도망치든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서 대처하도록 진화해 왔다. 우리 신체는 위협을 감지하는 순간 아드레날린이 솟구쳐 혈관 구석구석 퍼져 나가면서 심장박동과 호흡이 빨라지고 혈압이 치솟는다. 이때 우리가 느끼는 감정이 두려움이다. 싸우거나 도망치는 데 적합하게 근육 등 신체의 주요 기관을 준비시키는 과정으로 심리학에서는 이를 투쟁-도주 반응(fight or flight response)이라고 부른다.
■ 최근의 뇌과학은 두려움에 관해 많은 것들을 밝혀 냈다. 갑자기 큰 소리가 나면 뇌의 시상은 즉각 위협으로 인식, 이 정보를 편도로 보내고 편도는 자율신경계를 자극해서 신체의 반응을 일어나게 한다. 시상에 접수된 정보는 감각피질로도 보내져서 그 위협에 대해 좀 더 조심스러운 판단 과정을 거친다. 큰 소리가 났지만 해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전두엽은 편도의 두려운 반응을 억제해서 우리의 몸을 조용히 안정시킨다. 뇌의 전두엽이 편도를 통제하는 능력을 상실하면 시도 때도 없이 두려움에 빠지게 되는 공포 장애가 생긴다.
■ 공포증(phobia)은 어떤 대상이나 상황에 대해 매우 강력한 비합리적 두려움을 느끼는 증상인데 종류가 다양하다. 바늘 등 뾰족한 것을 몹시 두려워하는가 하면(첨단 공포증), 세균감염을 두려워 해 악수도 못하는 사람(불결 공포증)이 있다. 엘리베이터 등 좁은 공간을 견디지 못하거나(폐소 공포증), 높은 곳을 두려워 하기도(고소 공포증) 한다. 소나 개 뱀 거미 등 특정 동물에 기겁하는 동물 공포증도 있다. 공황장애(panic disorder)는 이유 없이 갑자기 심각한 공포 상태에 빠지는 경우다.
■ 공포증이나 공황장애와는 정반대로 정말 위험한 상황이 닥쳤는데도 두려움을 느끼지 못하는 공포 불감증 증세를 심리학이나 신경학은 특별하게 다루지 않는다. 그러나 요즘 나라 안팎에서 제기되고 있는 안보불감증에 대해서는 여러 모로 생각해 볼 부분이 있다. 북 핵 사태가 심각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데 많은 국민들이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큰 문제다. 하지만 앞뒤 안 재고 대북 강경 목소리를 높이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위험한 안보불감증이다. 두려움을 직시하고 두려울 때는 두려워하면서 두려움을 관리해 나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계성 논설위원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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