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138.
광화문 한복판에 서있는 청계천 복원공사 준공 카운트다운탑은 16일로 138을 가리키고 있다. 서울 도심에 청계천이 흐를 날이 138일 밖에 남지 않았다는 표시다. 서울시의 계획대로라면 10월 1일이면 일제가 청계천을 복개한 1937년부터 따져서 68년, 광복 후 청계천 복개가 끝난 1961년부터 쳐서 44년만에 청계천이 다시 흐르게 되는 셈이다.
그 청계천이 결국 말썽이다. 청계천 복원사업의 총책임자 격인 양윤재 서울시 행정2부시장이 개발업자에게서 억대의 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이어 전 한나라당 지구당 위원장이 이 업자에게서 이명박 서울시장을 소개시켜 달라는 청탁과 함께 무려 14억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청계천 개발계획을 입안한 전 서울시정개발연구원 선임연구원, 서울시 청계천복원계획담당관을 지낸 강남구의 한 국장도 각각 수천만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양 부시장과 전 시정개발연구원 선임연구원이 각각 전ㆍ현직 서울대교수라는 점도 충격이다.
당연하게도 한동안 잠잠한 듯했던 ‘서울시=복마전’이라는 등식이 다시 등장했다. 청계천이 ‘탁계천’이 됐다는 비아냥도 나왔다. 반면 이명박 서울시장을 겨냥한 작위적 표적수사라는 서울시의 반발, ‘병풍’에 이은 ‘청풍’이라는 야당의 반발도 충분히 예상됐던 일이다.
하지만 검찰 수사가 나오는 족족 해명에 바쁜 서울시 대변인은 말할 것도 없고, 이 시장의 이번 사건에 대한 반응은 너무나도 안이해 보인다. 그는 11일 광주를 방문해서 “호사다마라는 말이 있듯이 너무 순조롭게 일이 되다 보니 걸리는 것이 많은 것 같다”고 이번 사건을 호사다마에 비유했다.
청계천 복원사업 같은 좋은 일에 몇몇이 수뢰 혐의로 수사 받는 일 정도야 있을 수 있는 탈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이 시장의 트레이드마크처럼 된 불도저 같은 업무 스타일이라고 좋게 봐줄 수도 있겠지만, 그는 좋은 일일수록 마가 끼지 않도록 해야 하는 자리에 있는 책임 있는 사람이다.
이 시장은 이어 13일 이화여대 강연에서는 “청계천 복원 공사는 서울뿐만 아니라 세계와의 약속”이라며 “주변 상인 22만명이 나를 신뢰해줘 공사를 빨리 마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 말에서도 청계천이 흐르기를 기다리는 평범한 서울시민에 대한 고려는 느껴지지 않는다. 청계적 복원은 세계적 치적이며, 자신에 대한 신뢰의 결과일 뿐이다.
“2005년 10월 1일 청계천이 다시 열립니다.”
이 말에 “청계천에 물고기가 뛰논다니 주말에 아이들 손이라도 잡고 나가보면 좋겠구나” 하고 생각한다면 그는 영락없는 서울의 평범한 가장일 것이다.
“복개할 때는 언제고 멀쩡한 도로는 왜 또 파뒤집어서 이 난리야. 그 돈은 다 어디서 나와.” 고가도로와 복개도로 철거공사 때문에 막히는 교통에 짜증을 내고 분통을 터뜨리며, 세금 걱정을 했다면 그 역시 하루하루 힘들게 살아가는 서울시민일 것이다.
청계천 복원을 포함해서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서울에서 벌어지는 각종 공사 때문에 미세먼지가 사람이 살 수 있는 지경을 넘었다면서 “서울을 떠나라”고 외친 이도 있었다. 그 와중에 “청계천이 복원되면 땅값 좀 오르겠구만” 하고 입맛을 다신 이는 그나마 셈이라도 빠른 사람이었다.
모두 생각이 달랐더라도 청계천은 어쨌든 이제 서울시민에게 하나의 희망이다. 그 청계천이 몇몇 사람의 분탕질 때문에 구정물이 될까 걱정된다. 이번 사건이 비리의 명확한 규명 없이 또 정치적으로 호도되고 만다면 청계천 물은 흘러봐야 백년하청일 것이다.
하종오 사회부 차장 joha@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