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전에 바위 위에 지은 왕궁 시기리야, 부처의 치아 사리를 모신 불치사가 있는 고도(古都) 캔디, 석굴 사원이 있는 담불라와 인도양의 진한 쪽빛 바닷물이 넘실대는 해안가 등.
‘인도의 눈물’로 불리는 스리랑카는 세계 문화 유산에 오른 찬란한 문화 유적에다 보석과 같은 해안 휴양지로 유명한 곳이다. 하지만 막상 이 곳을 여행해 보면 가장 인상 깊은 것은 따로 있다. 하루에 3번 이상 반드시 맛보게 되는 것, 바로 홍차. 스리랑카에서 마시니 오리지널 ‘실론티Ceylon Tea)’인 셈이다. 식사후의 디저트로는 물론, 시도 때도 없이 찻상이 오르는 탓에 홍차를 마시는 게 생활처럼 익숙해진다.
차나무는 한 종류다. 찻잎을 뜯는 수확 단계를 거쳐 가공되는 과정에 따라 발효시킨 홍차(Black Tea), 반쯤 발효시킨 우롱차(Oolong Tea), 발효시키지 않은 녹차(Green Tea)로 나누어진다. 찻물이 붉다 해서 우리가 홍차라 부르는 것을 서양 사람들은 잎이 검다고 ‘블랙티’라 부른다. 홍차는 최상품인 페코(Pekoe)에서부터 최하품인 더스트(Dust)까지 품질에 따라 6등급으로 분류된다. 세계에서 차를 가장 많이 생산하는 국가는 인도, 중국, 스리랑카 순이지만 가공된 형태로 가장 많은 양을 수출하는 곳은 단연 스리랑카다.
스리랑카가 차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 영국의 식민지 시절이었던 1867년. 영국인 지주 제임스 테일러가 캔디 인근에서 처음 차나무를 심었다. 8ha 남짓한 작은 규모에서 재배하는 것으로 출발했지만 지금은 캔디를 비롯한 수와엘리야, 딤불라, 우바,우다푸첼라와, 루나 등 중남부 내륙 6개 권역의 18만ha에서 재배되고 있다. 연간 30만톤에 이르는 생산량 중 66% 가량이 해외로 수출된다. 여기서 벌어들이는 45억 달러의 외화는 스리랑카의 경제를 유지하는 큰 축이다.
천혜의 기후 조건으로 차는 스리랑카에서 일년 내내 생산되고 있다. 수도 콜롬보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차 경매 센터가 있는데 일주일 두 번씩 열리는 차 경매에서 1만여톤 이상씩 거래된다. 국가에서 관광과 더불어 가장 중요한 외화 벌이 수단인 실론티 생산을 지원하기 위해 1976년에 정부의 주요 부처로 차주무관청 ‘Tea Board’를 설립했다.
캔디 인근의 게라마나 차 밭에서 만난 아들과 함께 찻잎을 따던 한 여인은 적도의 땡볕 아래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있었다. "힘들지 않느냐"는 물음에 "차밭은 가족의 삶의 터전이기 전에 우리의 고향"이라며 "찻잎을 따는 것은 즐거운 일"이라고 말했다. 엄마의 옷자락을 움켜쥐고 차밭 고랑을 따라다니는 어린 아들의 표정도 밝긴 마찬가지다.
스리랑카인들에게 실론티는 돈이고 생활이자 자부심이었다. 눈부신 유적 그 이상으로 다가오는 실론티. 실론티는 그 뜨거움 만큼이나 깊게 각인됐다.
스리랑카의 공용어는 다수족인 싱할라족이 쓰는 싱할라어다. 그러나 200여년의 영국 식민 지배의 영향으로 관광지 등에선 영어가 대체로 통한다. 화폐 단위는 루피(Rs). 최근 시세는 1달러에 97~98루피 정도. 관광 목적으로 한달 이내 체류할 경우에는 비자가 필요 없다. 싱가포르항공이 싱가포르를 경유해 매일 스리랑카 수도인 콜롬보까지 운항하고 있다. 싱가포르 항공 전 좌석에는 다양한 영화와 게임, 음악 등을 개별적으로 골라볼 수 있는 시스템인 ‘크리스월드’가 장착돼 있다. 개인용 전화기로도 이용 가능하다.
스리랑카=글·사진 고영권기자 youngk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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