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후반 중학생이던 나는 가끔 역사 선생님 댁에 심부름을 가곤 했다. 내가 살았던 대전 대흥동은 당시는 변두리 동네였다. 사립문을 들어서니 여름날 어린아이 두 명이 배꼽을 내놓고 흙 마당에서 뛰어놀고 있었다. 마당에서 뒹구는 발가숭이 아이들을 웃으면서 바라보시던 선생님과 사모님의 인자하신 얼굴이 떠오른다. 자녀들에 대한 사랑으로 넘치는 행복한 표정이었다.
영어 학원이니 수입 교재니 조기 교육의 열기가 대단한 요즘 왜 그때 선생님 가정이 자꾸만 생각나는 것일까? 그 당시는 지금 같은 어린이집도 없었다. 유치원도 없었다. 집안에서 형제들과, 이웃집 어린이들과 어울리면서 꽃과 풀과 나무들 속에서 뛰어 노는 것이 ‘조기교육’의 전부였다. 너무나 많이 달라진 세상을 살아가면서 50여 년 전 추억이 그리워진다. 그때 서너 살 정도였으니 지금은 50대가 되었을 선생님의 자제들은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자연과 함께 놀았던 그 아이들이 어떻게 성장했을까 궁금해진다.
요즘 신문 사회면에서 촌지를 수수한 학교와 교사에 관한 기사를 보며 씁쓸해진다. 진정한 스승과 제자 관계란 무엇인가 생각해보다 그때의 선생님 생각이 났다. 나는 진심으로 선생님을 존경했다. 선생님이 가르치는 과목은 100점을 받았다. 선생님에게 인정받고 있다는 생각에서 더욱 분발해서 공부했다. 선생님은 나를 믿으셨고 나는 선생님을 무척 따랐다. 서로를 신뢰하는 것이 인간관계의 최우선이라는 것, 사람이 더불어 살아가는데 어느 것보다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교훈을 선생님을 통해 배웠다.
5월15일 스승의 날을 맞이해 여러 은사님들을 떠올리게 된다. 나는 역사 선생님에 대한 행복한 추억으로 하루를 보냈다. 신문에 나는 눈살 찌푸려지는 소식보다, 나의 중학교 시절 선생님처럼 학생들을 내 아이로 생각하고 교육에 임하시는 선생님이 더욱 많을 것으로 믿는다.
sjk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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