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지역 최초의 근대 중등교육기관인 충남 공주시 영명중·고교가 내년 10월15일로 개교 100주년을 맞는다. 영명학교는 기독교 감리교 우리암(禹利岩·Frank E C William)선교사가 ‘전도·개화·민주주의’의 이념을 바탕으로 설립해 한 세기 동안 지역 신학문의 발상지로, 인재 양성의 산실로 2만여명의 졸업생을 배출했으며 21세기 지구촌시대에 적응할 수 있는 명문학교로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실력을 겸비한 인간’ 교육
영명학교는 오랜 역사와 훌륭한 선배, 항일애족의 빛나는 전통에도 불구하고 한동안 침체기를 보냈다. 학생들이 감소하고 있는 중소도시에 위치한 지리적 약점에다 주변에 있는 소위 명문고교들에 둘러싸여 한때는 학생들이 진학을 꺼릴 정도의 불명예스런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학교와 재단, 동창회가 한마음으로 재도약의 의지를 다지고 있다.
이 같은 변화는 2002년 모교 출신인 오대현(55) 교장의 부임과 함께 학교경영의 최우선을 학생들의 학력 신장에 두면서 본격화하고 있다. 학교측은 먼저 지역 내 우수인재 유치를 위해 장학기금을 확충했다. 동문들과 총동창회의 협조를 얻어 3억5,000여만원의 장학기금을 마련, 지역 우수학생을 선발해 3년동안 장학금과 기숙사비를 지원하고 있다.
학교는 365일 문을 열어놓고 있다. 학생들은 원하면 일요일이나 휴일에도 등교해 모자란 과목을 보충할 수 있다. 교사들도 학생들의 학습 지도를 위해 교대로 학교에 출근하고 있다.
한편에서는 휴일없는 학교에 대해 "너무 학생들을 쥐어짠다"고 곱지않은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하지만 학교측은 좋은 대학에 얼마나 많은 학생을 보냈느냐가 학교 실력을 재는 척도가 된 요즘 세태에서 이를 ‘학교 부흥을 위한 몸부림’이라며 이해를 구하고 있다.
학력 신장과 함께 인성교육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이웃을 사랑하라’는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학생들이 봉사할 수 있는 인성을 기르는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이 교내 인사구호다. 교사와 학생들은 수업 시작 전 인사로 일상적인 "안녕하세요" 대신 "사랑합니다"라고 외친다. 서로 사랑하고 공경하는 마음을 갖고 실천하자는 취지에서다.
대외적인 봉사활동도 활발히 전개하고 있다. 지역 내 기독교종합사회복지관과 연계해 학생들이 관내 정신지체 수용시설을 찾아 월 1회 봉사활동을 한다. 또 독거노인과 결연을 맺어 어른 공경을 실천하고 있다. 매년 2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하다 2년 전 중단한 충북 음성 꽃동네 봉사활동 부활도 검토하고 있다.
이 같은 노력으로 영명학교에서는 요즘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학교폭력이라는 단어를 찾아볼 수 없다. 10여년 전만 해도 입학을 기피하던 학교가 바른 심성을 가진 학생들을 양성하는 모범학교로 탈바꿈한 것이다. 학교측은 최근 들어 학생들에 대한 징계가 없다는 점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
◆ 개교 100주년 기념사업
영명중ㆍ고등학교와 학교재단, 총동창회는 지난해 9월 개교 100주년 기념사업 준비위원회를 구성하고 각종 기념행사 준비에 나섰다. 아직 구체적인 조직을 갖추지는 않았지만 조만간 분야별 준비팀을 구성하고 동문들을 대상으로 행사기금 모금에 착수할 계획이다.
먼저 100주년을 맞아 학교 내에 학생들의 휴양을 위한 ‘영명동산’을 조성할 계획이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사이에 있는 빈터에 3,000여만원을 들여 연산홍을 심고 잔디광장을 만들어 학생들과 지역주민의 휴식공간으로 만들 예정이다.
영명동산에는 또 건학이념인 기독교정신과 민족학교의 진취적 기상을 담은 100주년 상징 기념탑도 세울 계획이다. 기독교의 상징인 십자가와 일제에 항거한 민족학교의 이미지를 조형화하고 하단부에는 영명학교가 배출한 유관순 열사와 황인식 초대 교장, 조병옥 박사의 전신초상을 형상화해 후배들이 모교에 대한 자긍심을 갖도록 할 계획이다. 건립비 2억9,000여만원은 동문 모금을 통해 충당할 계획이다.
이외에도 ‘영명학교 100년사’ 발간 및 동문체육대회, 지역주민과 함께 하는 종합 예술제 등도 준비중이다.
공주=허택회기자 thheo@hk.co.kr
■ 걸어온 길/ 공주 독립만세운동 이끌어 조병옥·유관순 등이 동문
충청권 최초의 중등학교인 영명학교는 1906년 10월 15일 미국 감리교 우리암(Frank E C Williams) 선교사가 백제의 고도 공주시 중동 현위치에 설립했다. 설립 당시 교명은 중흥학교였으나 1909년 정부 인가를 받으면서 교명을 영명학교로 바꿨다. 중흥학교 설립 1년 전인 1905년 역시 미국 감리교의 사애리시(Alice J Hammond) 선교사가 공주에 설립한 명선여학당과 1932년 통합했다. 영명중·고는 중흥학교가 세워진 1906년을 개교연도로 삼고 있다.
영명학교는 항일독립운동의 중심이었다. 1919년 4월 1일 영명학교 교사와 학생들이 중심이 돼 공주 독립만세운동을 일으켰다. 이들은 기숙사에서 독립선언서 1,000매를 등사해 거리에서 배포했다. 이 일로 교사 3명과 학생 6명이 체포돼 징역형을 받았다. 1929년 광주학생항일운동 당시 영명학교 학생들은 동맹휴학을 결의했고 이로 인해 학생 7명과 교사 2명이 옥살이를 했다.
일제는 결국 30여년간 영명학교를 운영하며 많은 애국지사를 길러낸 우리암 목사와 사애리시 여사를 1940년 국외로 추방한 뒤 이듬해 영명학교를 강제 폐교 조치했다. 영명은 해방 4년 후인 49년 영명상업중학교로 복교했고 2년 뒤 비로소 영명중·고교로 제자리를 찾았다.
영명은 걸출한 인재들을 많이 배출했다. 민주당 대통령 후보를 지낸 유석 조병옥 박사가 2회 졸업생이다. 유관순 열사도 오빠 유준석, 사촌오빠 유경석을 따라 영명학교를 다닌 뒤 이화학당으로 편입했다. 여성으로서 국내 최초로 목사 안수를 받은 전밀라 목사도 이 학교 출신. 영명학교 1회 졸업생인 황인식씨는 해방 후 초대 관선 충남도지사와 군산해양대 학장 등을 지낸 뒤 복교된 모교의 초대 교장으로 일했다.
우리나라 기독교계에는 영명학교 출신이 많다. 새문안교회 목사와 대한예수교 장로회 총회장, 숭실대 총장을 지낸 강신명 목사가 이 학교 졸업생이다. 또 YMCA 이사장, 기독교방송 이사장, 대한감리교 감독회장을 역임한 표용은 목사도 영명학교 출신. 표 목사는 현재 영명중·고 재단이사장을 맡고 있다.
공주=전성우기자
■ 오대현 교장/ "장학기금 통해 영재 적극 유치"
"개교 100주년은 영명의 중흥을 위한 제2의 개교 원년이기도 합니다."
2002년 부임한 영명중·고 오대현(55·사진) 교장은 이 학교 출신이다. 모교에서 봉사하기 위해 주위의 만류에도 공립학교 교장직을 그만두고 귀향했다.
"우리 학교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주도하며 민족의 정기를 바로 세운 명문학교입니다. 이 전통은 100년째 이어져 내려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오 교장은 "사학비리, 학교폭력은 영명학교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들"이라고 강조했다. 영명학교 재단은 학교 운영의 전권을 교장에게 맡기고 교직원 인사와 교육프로그램 등에 전혀 개입하지 않는 관행을 지키고 있다. 또 학교는 학생들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해주며 인성교육을 실천하고 있다.
오 교장은 "돌핀스(축구), 별과동화(천체관측), 셈틀(컴퓨터), 푸르메(자원봉사) 등 다양하고 자발적인 학생동아리 활동도 우리 학교의 자랑"이라고 소개했다.
하지만 고민도 적지 않다. 학력 업그레이드가 가장 큰 과제다. 학교법인이 감리교단에서 분리되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재정 문제도 있다.
오 교장은 "우리 학교는 교육환경의 변화에 민감하게 적응하지 못했고, 입시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지 못해 더 이상 명문학교로 불리지 못한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그는 "최근 들어 학교의 명예를 되살리기 위해 모든 구성원들이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그 전망이 매우 밝다"고 100주년을 맞는 각오를 피력했다.
오 교장은 "동문장학금을 비롯한 많은 장학기금 및 기숙사 제공 혜택 등을 바탕으로 공주와 인근 지역의 우수학생을 적극 유치하고 있다"며 "면학 분위기가 잡혀가고 있어 앞으로 대입시에서도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 교장은 "지난 세기 독립투사를 배출하며 민족과 나라에 기여했던 우리 학교는 앞으로 사랑을 실천하며 국제사회에 기여하는 21세기형 인재를 양성할 것"이라며 "100주년을 계기로 교육당국과 지역사회 등 각계의 많은 관심과 지원을 바란다"고 말했다.
공주=글·사진 전성우기자 swch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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