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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법 없이도 살 기업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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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법 없이도 살 기업은 없다

입력
2005.05.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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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를 지으면 벌을 받는다. 주위에 착하고 바르게만 사는 사람을 보면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고 말한다. 불행히도 보통 사람은 그렇지 못하다. 죄를 벌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처벌이 없거나 약하거나 쉽게 면죄부를 주면 보다 많은 사람이 죄를 짓게 된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법 없이 살 기업’은 그리 많지 않다. 기업은 때때로 경쟁의 고통을 피해 담합의 유혹에 빠지곤 한다. 경쟁하던 기업들이 한 통속이 되어 서로 짜고 가격을 올리면 소비자는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비싼 값에 물건을 사게 된다. 이게 담합이다. 자유주의 시장경제 하에서 기업간 경쟁은 혁신과 사회발전의 원동력이다. 한데 담합은 기업간 경쟁을 억지한다. 손쉬운 돈벌이를 제공한다. 기업이 담합의 충동에 사로잡히는 이유가 여기 있다. 담합이 쉽게 적발되지 않거나 적발되더라도 처벌의 수위가 약하면 더욱 그렇다.

담합으로 인한 피해보상과 관련하여 미국에는 3배 손해배상(treble damage)이라는 원칙이 있다. 기업이 담합하여 소비자에게 손해를 입히면 손해액의 3배를 배상하라는 취지이다. 이는 듣기에 따라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며 한 치의 에누리 없이 죄를 벌하던 과거 함무라비 법전보다 더 무시무시하다. 하지만 3배 손해배상 원칙은 경쟁법이 발전한 선진국의 현 공정거래법 내용이다.

왜 3배 손해배상인가. 여기에는 합리적 근거가 있다. 죄를 짓고도 발각되지 않는 경우가 빈번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담합을 세 번에 한번 꼴로만 적발한다면 적발할 때마다 적발하지 못한 다른 두 건의 담합까지 합쳐서 처벌하는 것이 타당하다. 죄짓는 것이 남는 장사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조치인 셈이다. 일벌백계의 정신으로 기업간 담합을 규제하기 위함이다. 그래야 소비자가 봉이 되지 않는다.

기업간 담합은 공정 경쟁을 제한하는 행위이기에 담합에 대한 처벌 강화는 전 세계적 추세다. 우리나라도 1999년에 공정거래법을 개정하여 담합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였다. 반(反)경쟁적 행위를 규제하여 기업간 공정 경쟁을 활성화시킬 목적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민사소송에 있어서 담합으로 인해 피해를 본 소비자는 손해액의 3배가 아닌 손해액 자체만 보상받을 수 있다. 이는 선진국의 3배 손해배상원칙에 비하면 그 처벌의 수위가 턱없이 낮다.

이렇게 되면 기업에게 있어 담합은 남는 장사가 된다. 걸리지 않으면 이득이 되고 걸려도 본전치기는 된다. 담합을 해 본 기업은 더욱 더 담합의 구렁텅이에 빠져 든다. 더욱 ‘분발’하여 더 많은 담합행위를 하려 든다. 개과천선과는 정반대로 행동하게 된다. 공정 경쟁 하는 기업만 밑지는 장사를 하는 셈이다.

합리적 수준의 처벌이 필요한 이유는 도처에 있다. 97년 죽어가는 많은 기업을 살려 내려고 적용된 화의제도가 과연 기업을 회생시키는데 얼마나 도움을 주었던가. 기업이 남의 돈을 가져다 쓰고 제대로 갚지 못하면 이 또한 일종의 범죄행위다. 이러한 범죄행위에 대한 자본주의 사회의 처벌방식은 기업퇴출이다. 남의 돈 떼어 먹는 기업이 죽어야 남의 돈 존중하는 기업이 산다. 사면만 해준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신용불량자 문제, 환경오염 문제도 비슷한 면이 있다.

죄를 벌하는 것은 당사자나 사회에 바람직한 유인체계(incentive system)를 구비하기 위함이다. 죄짓는 것보다 죄 안 짓는 것이 ‘남는 장사’가 되도록 판을 짜자는 것이다. 악보다 선이, 담합보다 공정 경쟁이, 그리고 술수보다 정석이 득이 되도록 유인을 제공하자. 처벌의 수위를 낮추고 툭하면 면죄부나 주는 식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권력층이 죄를 불공정하게 사면하면 더 큰 문제다. 그런 사회는 공평한 사회도, 희망이 보이는 사회도, 열린사회도 아니다.

류근관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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