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감사합니다. 선생님 정말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저는 33년생 할머니입니다. ……. 교장 선생님을 비롯한 많은 선생님 힘내세요.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선생님 파이팅. 이춘엽 할머니 드림."
인천 서구 백석고 3학년 김우중 천병만 지성배 김진광 이두희군 등 5명은 지난달 중순 조회 도중 교장 선생님이 갑자기 호명하자 깜짝 놀랐다. 특별히 잘못한 일도, 잘한 일도 없다는 생각에 이상하게 여기며 머뭇머뭇 단상으로 나갔다. 교장 선생님은 매우 기쁜 얼굴로 "너희들이 학교를 빛냈다"고 말한 뒤 모범상을 수여했다. 이들은 시상 직후 교장 선생님의 오랜 설명을 듣고서야 며칠 전 일을 떠올리게 됐다.★관련기사 A8면
지난달 9일 오후 이춘엽(72) 할머니는 인천 계양구 계산동에서 부평구 쪽으로 가기 위해 시내버스에 올라탔다. 맨 뒷자리에 앉아 가고 있는데 교복을 입은 고교생 5명이 주변 자리를 메웠다. 평소 학생들이 욕을 많이 하고 입버릇이 나쁜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던 터였다. ‘얘들이 또 무슨 이야기를 할까’라는 생각에 학생들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그런데 예상과는 달리 학생들은 수업이나 시험 등 매우 ‘학생답고 건전하게’ 이야기를 했고, 특히 같이 버스에 있던 30여분 동안 욕을 단 한번도 사용하지 않았다. 차 안에서나 길에서 학생들의 거친 언어에 비참함까지 느꼈던 할머니로서는 이 학생들이 너무 착해 보였다.
할머니는 하차하기 직전 한 학생에게 학교 이름을 확인하고 며칠 뒤 이 학교로 ‘백석고 선생님 감사합니다’라는 제목의 편지를 보냈다.
"열여덟자(욕설) 안 들어가고는 대화가 안 되는 아이들이 전부 다인데 이 학생들을 보니 갑자기 마음이 흐뭇해졌습니다. 이런 학생들을 가르치고 키우는 학교가 있어 앞으로도 희망이 있어 보입니다. 학생들을 칭찬하고 선생님들께도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기 위해 몇 자 적었습니다."
편지를 읽은 오제민(58)교장은 할머니에게 감사의 답장을 보냈다. 교직생활 36년 동안 이런 일은 처음 겪었기 때문이다. 이어 오 교장은 교사들에게 "9일 오후 해당 버스를 탄 사람을 찾으라"고 지시했다. 각 반을 돌아다니면서 확인한 끝에 5명의 학생을 찾아냈다. 성적이 뛰어나거나 평소 ‘범생’으로 알려진 학생이 아닌, 정말 평범한 애들이었다. 학생들은 자신들이 특별한 행동을 한 기억이 없어 "왜 그런 것은 묻지"라고만 생각했다. 그리고 조회 시간에 불려나가 전교생과 교사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상을 받고 교장 선생님이 직접 사연까지 소개하자 "잘한 일도 아닌데 쑥스럽구만"이라며 뒷머리를 긁었다.
사연을 들은 교사들은 할머니의 편지에 감사해 하면서도 현 세태에 대해서는 씁쓸해 했다. 한 교사는 "요즘 청소년들이 얼마나 욕을 많이 하면 이런 일로 상을 받을 수 있겠느냐"며 "학생들을 가르치는 입장에선 한편으로 부끄럽기도 하다"고 말했다.
강철원기자 str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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