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화 시작 이래 기업들의 수익성과 재무구조가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돈도 많이 벌고, 벌어들인 돈으로 계속 빚을 줄인 결과다. 하지만 투자에는 극히 소극적이어서 몇몇 대기업만 부자가 되고 나머지는 기업실적호전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경제적 절연상태가 심화하고 있다.
16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2004년 기업경영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제조업체들은 7.8%의 매출액 경상이익률을 기록, 산업화가 개막된 1965년 이래 최고수준을 나타냈다. 이는 1,000원 짜리 물건을 팔아 78원을 남겼다는 뜻이다. 기업들의 지난해 수익구조가 수출호조 및 금리·환율하락의 영향으로 2003년(4.7%)보다도 월등히 좋아졌다는 얘기다.
대기업의 매출액 경상이익률은 10.2%에 달했고,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포스코 LG전자 SK㈜ 등 ‘빅5’는 무려 17%의 이익률을 달성했다. 하지만 매출액 500억원 미만 중소기업의 경상이익률은 2.0%에 불과해 2003년(1.9%)보다 별로 나아진 것이 없었다. 양극화가 그만큼 커졌다는 얘기다.
기업들은 늘어난 순익을 주로 빚 갚는데 사용했다. 그 결과 제조업체들의 부채비율은 2003년 말 123.4%에서 작년 말에는 104.2%로 하락, 역시 1966년 이래 최저수준으로 떨어졌다. 국내 제조업 부채비율은 미국(141.2%)이나 일본(145.4%)보다도 낮은 수준이며, 이런 추세가 지속될 경우 금년 말엔 부채비율 두자릿수 시대 진입이 확실시된다.
기업들은 빚을 갚고 남은 돈을 현금으로 쌓아뒀다. 기업들의 비축현금은 무려 66조원. 2003년 말 보다도 6조원이나 더 쌓였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하기 위해서든, 적대적 인수합병(M&A) 시도에 대항할 경영권 방어비용으로 쓰기 위해서든, 아니면 마땅히 굴릴 데가 없어서든 기업들의 현금선호 경향은 갈수록 뚜렷해지는 추세다.
그러다 보니 투자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기계 설비 같은 유형자산 증가율은 2003년 1.7%에서 지난해 4.8%로 다소 높아졌지만, 이런 설비자산보다 총자산이 더 많이 늘어난 탓에 전체 자산 가운데 유형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41.6%에서 40.6%로 되레 하락했다. 현금자산비중은 4년째 늘고 있지만, 유형자산 비중은 3년째 작아지고 있다. 투자가 기업자금의 활용순위에서 완전히 뒷전으로 밀리고 있는 것이다.
한은 관계자는 “지난해 성장성과 수익성, 재무구조는 사상 유례없는 기록을 남겼지만 투자부진과 양극화의 문제는 그대로 남아 있다”고 말했다. 기업들이 돈을 벌고 이 돈이 투자로 이어질 때 국민경제는 성장하는 법이지만 지금은 이 선순환 고리가 끊어진 상태다.
이성철 기자 s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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