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노련 비리 의혹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한국노총 비리 의혹 전반으로 확대되면서 한국노총이 긴급 연석회의를 소집하는 등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한국노총은 16일 오전 10시 산별대표자 25명, 시·도 지역본부장 16명 등이 참석하는 긴급 연석회의를 열고 이번 사태에 대한 대책을 강구할 방침이다. 한국노총의 이날 회의는 이미 내려진 결론을 확인하는 형식적인 수준의 논의에 그치지 않고 참석자들의 난상토론을 바탕으로 당면한 위기의 타개방안을 도출하는 모임이 될 전망이다. 특히 권오만 한국노총 사무총장의 직위유지 여부와 징계, 외부의 회계감사, 간부들의 재산 공개 등을 집중 거론할 것으로 알려져 회의 결과가 주목된다.
한국노총은 비정규직 관련법안이나 노사관계 법·제도 선진화 방안(노사관계 로드맵) 등 현안을 차질 없이 수행하기 위한 조직 살리기에 나서되 개인 비리나 부조리에 대해서는 철저히 선을 긋는다는 방침이다.
한국노총은 10일 긴급 산별대표자회의를 열었을 때만해도 대 국민 사과성명만 발표하고 권 총장의 직위는 유지하도록 했다. 권 총장의 혐의가 확정되지 않았고 기소되지도 않은 점을 감안한 조치였다. 그러나 검찰 수사가 조직 자체를 죄어오자 더 이상 처리를 늦출 수 없게 됐다. 권 총장 개인비리에서 출발한 검찰 수사는 이제 서울 여의도 중앙근로자복지센터 신축 관련 발전기금 수수 등 한국노총 비리 의혹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번 기회에 노조의 내부 비리에 대해 온정적인 태도를 보이는 관행과 완벽히 결별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내·외부에서 잇따라 나오고 있다.
외부의 전문기관으로부터 감사를 받고 일정 직위 이상 간부들의 재산을 공개하자는 입장이 힘을 얻는 것은 이 같은 차원이다. 한국노총 등 기존 노동운동에 대한 비판세력인 노동조합개혁과 민주주의추진운동본부(노개민추)는 "노조간부비리와 노조의 부패사건은 정부나 언론이 방치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지만 최상급단체인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부패노조와 비리노조간부를 묵인한 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며 "일부 노조간부들이 노조를 권력과 이권을 챙기는 수단으로 악용해온 점을 시인하고 강력한 처벌과 제도개선 등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노총 위원장 출신의 박인상 국제노동재단 이사장도 "노동운동은 도덕성이 생명인데 이번 사태로 크게 훼손됐다"며 "개인비리 등을 자체적으로 철저히 정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이번 기회에 양 노총이 현장 중심 조직으로 거듭나고 철저한 개혁을 통해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송두영기자 dysong@hk.co.kr
■ 노동계 잇단 비리…지도부 통제력 약화…/ 김 빠진 춘투
노동계가 이 달부터 본격적인 춘투(春鬪)에 나섰으나 잇따라 노동계 비리사건이 불거지면서 투쟁강도가 상당히 떨어져 있다. 이에 따라 향후 춘투도 다소 무기력한 모습을 보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노사정 협상 결렬로 비정규직 관련법안 국회 처리에 실패한 이 달 초까지만 해도 올 춘투는 비정규직 관련법안 투쟁과 임금협상이 맞물려 심상치 않을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한국노총 비리 의혹사건과 현대자동차 노조 간부들의 사원채용 금품수수 사건이 터지면서 노동계의 입지가 크게 위축됐다. 또 전환기를 맞고 있는 양 노총 지도부가 예전처럼 산하조직에 대해 일사불란한 지휘·통제력을 발휘하기 어렵게 돼 춘투 동원력이 크게 떨어졌다는 게 노동계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15일 노동부에 따르면 올 들어 노사분규는 지난주까지 33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28건)보다 다소 많았으나 분규 참가자수는 1만2,435명으로 지난해 2만9,638명보다 훨씬 적어 분규강도가 그다지 높지 않다. 양 노총이 장외투쟁 일정과 임금 인상률 등을 제시하며 사업장별, 업종별 투쟁을 독려하고 있으나 큰 효과는 없는 상황이다.
민주노총은 2개월째 파업농성을 벌이고 있는 울산플랜트 노조의 투쟁을 지원키 위해 27일 전국노동자대회를 울산에서 갖기로 하는 등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장외투쟁을 선언했다. 민주노총은 또 17일 울산에서 영남권 단위노조 및 본부노조가 참여하는 ‘영남권 노동자 대회’를 갖고, 20일에는 충북 청주시에서 ‘중부권 노동자 대회’를 가질 방침이다. 이밖에 민주노총 소속의 15개 산별연맹 가운데 금속연맹 공공연맹 등 9개 연맹 내 기업 노조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와 차별철폐를 올 임·단협 요구로 내걸었다. 최대 산별노조인 금속연맹은 최근 ‘불법파견투쟁위원회’를 결성, 본격적인 투쟁에 나섰다. 민주노총은 지난달 ‘무기한 총파업 지침 4호’를 통해 "임·단협 투쟁을 6월 중순으로 집중하고 순환파업을 포함한 공세적 권리 보장입법 쟁취투쟁을 전개한다"고 밝혔다. 한국노총도 올 임·단협 투쟁 지침을 통해 정규직 9.4%, 비정규직 19.9%의 임금인상을 목표로 강력한 투쟁을 전개하고 협상시기를 6월 하순에 집중할 것을 주문했다.
그러나 양 노총 산별 가맹조직과 지역조직은 지도부의 뜻과는 상관 없이 비정규직 관련법안 투쟁에 대해 적극성을 보이지 않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원 관계자는 "최근 노동계의 상황이 악화하고 있는데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 노조와 중소기업 노조 등 각각의 이해가지 엇갈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정규직 중심의 단위 노조와 대기업 노조의 춘투는 ‘실천적 투쟁’보다 ‘선언적 투쟁’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송두영기자dyso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