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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에게 보내는 편지/ 효창아 힘내, 누나가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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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에게 보내는 편지/ 효창아 힘내, 누나가 있잖아!

입력
2005.05.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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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내 동생 효창아. 지금쯤이면 넌 학교에서 뜨거운 태양 아래 열심히 운동을 하고 있겠구나. 이 누나는 일요일 시원한 학교에 나와 너에게 편지를 쓰고 있단다. 누나가 너에게 편지를 쓰는 건 처음이지? 누나가 동생에게 편지를 한 번도 안 썼다니 참 미안하구나.

효창아! 누나가 네게 미안한 게 많아. 다른 누나들처럼 먹을 것을 사준다든가, 다른 엄마들처럼 용돈을 주거나, 맛있는 반찬을 만들어 주거나 다른 아빠들처럼 주말에 같이 놀러가는 거나, 같이 축구를 한다거나 등등 해줄 수 있는 것은 많이 없지만 그래도 다른 누구보다 내 동생을 사랑하고 아끼는 거 알지?

이런 말 하고 싶어도 막상 얼굴보면 남세스러워서 못하겠더라, 하하( ). 누나가 수줍음을 많이 타잖니.

매일 뜨거운 햇볕 밑에서 하루종일 뛰어 다니고 들어와 녹초가 된 널 보면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게 마음이 아프단다. 아침에는 바쁘다고 빈 속으로 등교하고 그렇다고 저녁에는 내가 밤 늦게까지 야간 자율학습을 하느라 늦게 들어와서 저녁밥도 못 챙겨주고 얼굴 보기도 힘드니 뭘 해주고 싶어도 시간이 없어서 못 하는구나.

부모님이 안계셔도 다른 애들보다 더 멋있게 해주고 싶고 뒤지게 하고 싶진 않은데…. 마음만 이럴 뿐 실천이 안 되는구나. 그래도 항상 남들 앞에서 당당하고 혼자서도 밥도 잘 차려먹고 집안 일도 곧잘 거드는 널 보면 마음이 뿌듯해지고 힘이 솟아나. ( )

어렸을 때는 매일 친구들한테 맞고 다녔던 너였는데, 지금은 내가 위로 쳐다봐야 할 정도로 키가 크고 더욱 강해지고 듬직해진 널 보면 예전에는 살아가기가 막막하고 힘들었는데 지금은 밝고 행복한 일들만 남은 것 같아. 계속 이렇게 잘 크고 열심히 야구해서 박찬호 같은 세계적인 야구선수가 되렴.

나는 열심히 공부해서 훌륭한 선생님이 될께! 돈도 많이 벌어 지금은 병이 심해져서 누워 계시는 우리 할머니 호강도 시켜드리고 우리를 이렇게 잘 자라도록 도와주신 후원자님들께도 꼭 보답하자. 또 우리보다 더 어려운 환경에서 살고있는 사람들을 도와주면서 살자꾸나.

아, 얼른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빨리 돈을 벌 수 있고 우리 할머니 병도 고쳐드리고 네 뒷바라지도 할 수 있잖아. 너는 딴 걱정말고 운동에만 열심히 전념하렴. 혹시 운동하다가 힘들 때는 이 든든한 누나와, 항상 아프셔서 누워 지내시지만 늘 뒤에서 우릴 지켜주는 할머니를 생각하자꾸나.

아! 너 그때 기억나니? 우리 몇 년 전 여름방학 때 강원도 골짜기 폐교로 놀러갔잖아. 그때 개울에서 물놀이도 하고 수박도 깨먹고 푸세식 화장실도 가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추억 중 하나야. 그때 우리 그 어두운 산골짜기에서 손전등으로 하늘을 비춰가며 별자리를 구경했잖아.

그 때 손전등으로 비춰본 하늘은 너무 아름다웠어. 꼭 작은 손전등으로 몇만㎞ 떨어져 있는 별들을 비추는 것 같아 신기하기도 했는데, 그 작은 손전등에서 나오는 작은 빛이 어둠 속에서 한 줄기로 빛날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막 용기가 나.

난 아직도 힘들거나 지칠 때 그때 그 추억을 되새긴다, 우리는 그 작은 손전등 불빛처럼 지금은 어둠 속에 있는 빛과 같을지도 몰라. 하지만 지금은 힘들어도 미래에는 찬란히 빛날 수 있을 거야.

내 동생 효창아, 야구 열심히 하고 언제나 건강하게 지내는 거 잊지마. 알았지? 누나랑 할머니가 항상 뒤에서 지켜본다는 거 잊지 말고(·). 사랑한다 내 동생아.

경기 안산 초지고 1학년 전연희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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