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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의 나쁜 취향-문화, 낯설게 보기] (15) 다시듣는 민중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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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의 나쁜 취향-문화, 낯설게 보기] (15) 다시듣는 민중가요

입력
2005.05.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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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래 민중가요를 듣지도 부르지도 않았다. 대학교를 떠난 이후로 어떤 신곡들이 나왔는지, 요즘 집회에선 어떤 노래들이 불리는 지 관심도 없었다는 게 솔직한 입장이다.

그런 주제에 민중가요에 대해 생각하게 된 건 딱히 5월이 됐기 때문만은 아니다. 나 스스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터져 나온 울분과 슬픔과 희망을 되새겨 볼 정도로 뜨거운 현실개혁의지로 충만했던 인물도 아니다. 그런 내가 요즘 ‘타는 목마름으로’를 심심찮게 듣고 부른다.

그때의 심정은 “저 청한 하늘 저 흰 구름 왜 나를 울리(김지하 시 ‘새’)나”는 사적 감정의 토로에 다름 아니지만, 꼭 거기에 그치지만은 않는다고 믿는다. 민중가요에 얽힌 기억 하나.

처음 민중가요를 접한 건 고등학생 때다. 소위 ‘고운’(고등학생 운동권)을 자처하던 친구들과 어울려 대학가 근처 사회과학서점을 들락거리며 구한 테이프엔 ‘타는 목마름으로’ ‘동지가’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애국의 길’ 등의 노래들이 담겨 있었다.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금서인 양 돌려 보며 결의에 찬 음성으로 그 노래들을 함께 부르던 친구들이 지금 뭘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나의 민중가요 체험의 원형지점에서 그들은 오윤의 인물판화처럼 강인하게 음각돼 있다.

그러나 그들이 고등학생 신분으로 가투 현장에 뛰어들어 주먹을 흔들어 댈 때 나는 그들 곁에 있지 않았다. 골방에서 혼자 ‘타는 목마름으로’를 들으며 얄궂은 눈물방울만 떨궜을 뿐이다.

그러다 각기 다른 대학으로 뿔뿔이 흩어져 누구는 수배를 당하고 누구는 군대를 가고 누구는 실종됐다는 얘기만 풍문으로 들었다. 그 혼란스런 이합집산 이후 1991년 5월 투쟁의 거리에서 돌멩이를 던지다 조우한 한 친구가 “네가 웬일이냐?”며 의구심에 가득 차 쳐다보던 눈길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비밀리 유통되던 민중가요가 대중적 인지도를 갖게 된 건 87년 이후다. 김민기, 한대수 등의 노래가 해금된 것도, 민중가요의 실체를 미온하게나마 공식적으로 알렸던 ‘노래를 찾는 사람들’(이하 ‘노찾사’)의 1집이 발매된 것도 그 해다.

이상화의 시에 곡을 붙인 ‘빼앗긴 들에도 봄은 아는가’ ‘일요일이 다 가는 소리’ 등을 담은 노찾사의 1집은 지금 듣기엔 오히려 건전가요에 가까울 정도로 강도가 약한 서민적 정서를 담고 있다.

그들의 음악적 지향점이 보다 확연히 드러난 건 이한열을 추모한 ‘마른 잎 다시 살아나’와 제주 4·3 항쟁의 원혼들을 기리는 ‘잠들지 않는 남도’ 등이 수록된 2집부터다. 노찾사 2집은 89년에 발매됐다. 위에 든 두 곡의 원작자는 잘 알려진 대로 안치환이다.

지금은 미국의 브루스 스프링스틴을 연상시킬 정도로 건강하고 힘찬 국민가수 같은 느낌이지만, 80년대 안치환은 그 당시 민중가요의 대표곡들을 애절하게 불러 젖히는 탁월한 소리꾼이었다. ‘타는 목마름으로’ ‘영산강’ ‘부용산’ ‘청산이 소리쳐 부르거든’ 등을 그 만큼 수려하고 비장미 넘치게 부르는 가수를 보지 못했다.

87년 6월 항쟁의 주역 세대에 속하는 안치환은 운동권에 몸 담고 있으면서도 대학가요제에 나가고 싶은 욕구를 제어하기 힘들었다고 고백할 만큼 노래에 대한 열망이 강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돌이켜 보면 안치환은 한국 민중가요가 제도권으로 수렴되는 과정에서 사회적 변화와 문화적인 혼돈의 시점을 명징하게 보여준 가수다. 안치환의 공식 솔로앨범이 나온 건 분신정국과 유서대필 파동으로 운동권의 도덕성에 철퇴가 떨어진 91년 무렵이다.

91년 이후 학생 노동자뿐 아니라 일반 시민까지 가담한 대규모 시위가 전무하다는 사실(최근의 촛불시위는 사회운동이란 측면에서 봤을 때 8, 90년대 학생운동과는 전혀 다른 의미와 방법론을 지녔다)을 따져 보면 안치환의 솔로활동 시기가 매우 아이러니컬해 보인다.

‘안치환의 노래 한마당’이란 타이틀이 붙은 앨범엔 ‘철의 노동자’ 등 그 무렵 시위에서 주로 불리던 노래들 대부분이 수록돼 있다. 집회 현장에서나 들을 수 있던 노래들이 정식 상품으로 인정돼 레코드가게에 깔리게 된 것이다. 원작자에 대한 크레딧 조차 불명확한 지하의 노래들이 일반 대중의 안방으로 무대를 옮겼다는 사실은 그 당시 문화적 격변의 한 사례로 남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현재까지도 꾸준히 앨범을 발표하면서 가요계에 확실하게 자리매김한 그의 신곡을 나는 더 이상 찾아 듣지 않는다. 아일랜드 록그룹 U2의 영향이 짙게 느껴지는 그의 4집(‘내가 만일’이 수록된) 이후 앨범이 발매될수록 전형화되어버리는 그의 창법과, 독창적 구심 없이 매끄럽기만 한 음악적 스타일이 지겨워진 탓이다.

록음악을 실험한 사운드와 ‘내가 만일’ 등 건전가요 풍이 공존하는 그의 음반들은 스스로의 고유한 음악적 정체성을 완성했다기보다 자신의 개인적 음악취향과 태생적으로 부여된 저항가수의 이미지, 즉 세상에 대해 옳은 말을 해야 한다는 강박이 평면적으로 나열된 느낌이다.

때문에 ‘타는 목마름으로’ 등을 부를 때의 절박한 심정이나 ‘노동자의 길’을 부를 때의 풋풋함이 상쇄돼 어설픈 카피음악처럼 들린다.

비단 안치환 뿐만 아니라 90년대 이후 민중가요는 더 이상 지하의 노래가 아니게 됐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등장해 가요계에 지각변동을 일으켰던 것도 그 직후다.

바야흐로 노래의 춘추전국시대가 시작된 셈인데, 노찾사와 ‘꽃다지’로 대표되는 민중 노래패들의 활동이 공식적으로 이뤄지고, 록 스타일의 노래로 민중가요의 새로운 활로를 모색한 ‘천지인’이나 ‘조국과 청춘’ 등의 노력이 가세했지만, 특유의 현장성을 상실한 민중가요는 급변하는 사회의 다양한 문화적 욕구들을 충족시키지 못한 채 점점 시들해져 갔다.

90년대 중반, 사전검열제도가 위법 판결을 받으며 민중가요가 표현했던 문제의식들을 보다 다양한 형태로 분출하는 대중가요의 판세 변화도 민중가요 퇴조에 한몫 했다고 할 수 있다.

홍대 앞 클럽가를 중심으로 형성된 펑크 열풍은 기존의 지사적 저항의 음조를 보다 난폭하고 일회적인 소동으로 표변시키며 소위 ‘저항가요’의 새로운 지평을 열기 시작했다. 지하에서 끈끈하게 불리던 민중가요는 지상으로 떠오르는 순간 기운을 잃어버린 음지식물처럼 되어버렸다.

그런데 그 한물간 음지식물들이 요즘 내 구미를 자극한다. 이게 웬 뚱딴지 같은 복고심리인지 스스로도 좀 어리둥절하지만, 최근 다시 듣게 된 민중가요들에서는 여타 노래들에서 들을 수 없는 끈끈한 생명력이 느껴진다.

그 노래들이 지닌 의미와 힘은 가사에서 나타나는 현실인식과, 별다른 기교 없이 공동체적 심상을 건드리는 간결한 구조로 드러난다. 그것은 그 노래들이 현실적인 위세를 드러내던 시절이나 추억을 자극하는 형태로 지극히 개인적으로 공명하는 지금이나 매한가지다. 마치 각종 퓨전 음식들이 즐비한 밥상에서 싱싱한 산나물을 골라먹는 듯한 청량감과 동시에, 올곧고 투명한 기백은 오히려 신선하다는 느낌마저 준다.

그 신선한 생명력의 근원은 바로 그 노래들이 내포하고 있는 아마츄어리즘에 있다. 그런 점에서 그 노래들은 관제 홍보송인 ‘오 필승 코리아’로까지 연계되는 민중가요의 갈지 자 행보보다는 최근 인디 계열의 포크송 스타일과 유사한 맥락에 놓이게 된다.

개인적으로 지나치게 미니멀하고 내성적인 인디 포크송 보다는 80년대 ‘마른 잎 다시 살아나’가 더 끈끈하고 원색적인 힘을 지녔다고 본다. 물론, 시대적 정서가 변화했다는 걸 부인하지는 않는다.

사실, 80년대 민중가요가 강한 설득력을 가질 수 있었던 데에는 그 당시 풍미했던 민족 문학 계열 시들의 영향도 무시 못한다. 김지하 박노해 백무산 양성우 등의 시가 없었다면 과연 안치환의 미성이 빛을 발했을까. 그의 초창기 자작 노래들이 가지고 있던 힘 또한 세계에 대한 격렬한 문제의식을 직접적으로 토로함으로써 발휘된 저항의식 결과다.

더불어 그 노래들이 유통되는 시스템도 노래의 설득력과 효과를 반등시키는 작용을 한다. 모든 노래는 그것이 불리는 방식에 따라 전혀 다른 맥락에 놓이게 되는 특유한 현장성이 있다. 이 말을 똑 같은 노래를 어디에서 어떻게 부르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는 소리로 이해해도 크게 틀리지는 않다.

요컨대 노래는 그것이 만들어진 태생적 상황과 그것이 불리는 정황에 의해 정반대의 위상을 가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게 양희은의 ‘상록수’다. 한때 저항가요의 표본이었던 그 노래는 이제 대통령도 애창하는 국민적 건전가요가 되었다. 이러한 현상을 단지 시대의 변화, 정권의 변화의 근거로만 파악하는 건 단견이다.

지금에 와 예전의 민중가요들이 새롭게 들리는 건 그 탓이다. 음지식물에 비유했을 만큼, 그 노래들을 들으면서 나는 휘황찬란하게 변해 버린 지금의 사회가 여전히 암울한 역사의 지층 위에 놓여있다고 실감한다.

그렇지 않다면 자유와 저항을 갈급하는 구닥다리 노래들을 들으면서 2005년 5월에 흘러내리는 이 갑작스런 눈물의 의미를 나는 도저히 해명할 수 없다. 이게 시대착오적인 감정이라면 이 시대는 과연 어떤 감정적 착오를 일으키고 있는 것일까. 한창 시절 안치환의 목소리로 ‘타는 목마름으로’를 들으며 갑자기 머리 속이 복잡해진다.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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