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개성에서 열리는 남북 차관급 회담에 임하는 정부의 전략은 크게 3가지다. 회담을 계기로 10개월 동안 단절됐던 남북관계를 정상화하는 한편 북핵 문제 해결의 전기를 마련하고 비료지원 문제를 매듭짓는다는 게 골자다.
이 원칙 속에는 최근 정부의 대북 입장 변화도 담겨있다. 특히 정부가 인도적 차원에서 비료를 지원키로 한 점과 ‘북핵 문제-남북관계 병행론’ 원칙 강조가 대표적이다. 북핵 문제 해결 정도와는 별도로 남북대화를 이어나가고 정부가 향후 북핵 문제 해결의 지렛대를 확실히 쥐겠다는 복안으로 해석된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15일 "비료문제는 인도적 차원에서 진행되는 것"이라며 ‘인도적’이라는 단어를 강조했다. 이는 조건 없는 지원도 가능하다는 의미다. 그 동안 정부는 남북 당국간 대화가 재개되면 협의를 거쳐 비료를 지원하겠다고 했지만 ‘조건 없는 지원’ 쪽에 무게가 더 실린 것이다. 비료지원에는 정부의 노림수도 엿보인다. 정부는 비료는 봄철 파종기에 뿌려야 한다는 점을 감안, 선박 뿐만 아니라 육로 및 철도수송도 제안할 방침이다. 특히 경의선 철도를 통한 지원이 성사될 경우 지난해 10월 개통된 남북 철도망이 처음으로 활용된다는 의미가 있다. 인도적 대북 지원에 남북경협 확대라는 일석이조 효과까지 노린 것이다.
북핵 문제와 관련된 정부의 입장 변화도 주목된다. 고위 당국자는 "북핵문제 해결과 남북대화는 병행되는 것"이라며 "남북대화 재개가 6자회담 재개에도 좋은 영향을 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 일각에는 그 동안 북핵 문제에 진전이 없는 상황에서 남북대화가 도움이 되겠느냐는 회의론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 회담을 통해 북핵 문제 해결 국면에서 주도권을 잡고자 하는 의지가 엿보인다. 6자회담은 6자회담대로 가더라도 남북대화의 역할이 있다는 것이다.
다만 북측 대표단이 핵 문제를 다루는 북한 외무성 라인이 아닌 대남관계 실무진이라는 점이 변수다. 정부 당국자는 "북핵 문제에 대한 우려를 전달하고 핵 포기 시 북한이 얻을 수 있는 이득 등을 설명할 예정이지만 북측의 특별한 태도변화를 기대하기는 힘들다"며 "북측의 6자회담 복귀를 위한 대화통로를 우리 정부가 확보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정부는 또 이봉조 통일부 차관을 회담 수석대표로 내세운 만큼 지난해 7월 이후 중단됐던 장관급, 경제협력추진위, 장성급 군사, 적십자회담 등의 재개도 중점 논의할 계획이다. 또 이산가족 상봉문제 등도 제기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정부는 이번 회담은 결과 보다 재개 자체에 더 큰 의미를 두는 분위기다.
정상원기자 ornot@hk.co.kr
■ 北 왜 태도 바꿨나/ 남북경색 풀고 비료 얻으려? "국제사회 압력 낮춰 6者 유리한 분위기 조성" 시각도
1년 가까이 남북 대화와 북핵 6자회담을 거부해온 북한은 왜 남북 회담의 문을 두드린 것일까. 단순히 비료 지원을 받기 위해서인가, 아니면 남북관계를 정상화할 생각에서인가. 또 남북 대화는 6자 회담 재개를 촉진한 것인가 아니면 지연시킬 것인가. 궁금증이 한둘이 아니다.
전문가들은 북측의 움직임을 남북 국면과 북핵 국면 모두를 겨냥한 포석으로 분석했다. 우선 김정일 위원장의 업적인 6·15 남북공동선언 5주년을 앞둔 상황에서 꽁꽁 얼어붙은 남북 관계를 마냥 끌고 가기는 껄끄럽고, 내달 논밭에 뿌려야 할 비료도 당장 아쉽기 때문에 북측이 태도를 바꿨다는 시각이다. 이런 맥락에서 북한 방송이 이번 회담 목적을 ‘남북대화 정상화’로 언급한 만큼 이번 회담을 계기로 장관급 회담 등 6·15 선언이후 이어졌던 각종 회담이 재개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남북대화에서 북핵 문제가 갖는 비중을 생각해보면 상황은 복잡해진다. 현 시점의 남북 대화라는 게 북핵 문제와 연결될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핵 문제에 대한 북측의 입장은 회담의 의미와 향후 남북관계의 성격을 결정할 것이다.
먼저 북측이 북핵 문제에 뚜렷한 전망을 내놓지 않은 채 남측과 만난다면 대화 국면은 짧게 끝나버릴 수 있다. 핵 실험설, 영변 5㎿ 원전 가동중지와 폐 연료봉 인출 등으로 급격히 긴장이 고조된 북핵 국면의 해결 의지 없이 남북관계 진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이는 북측이 향후 한미정상회담의 결과를 지켜보겠다는 뜻을 암시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다음은 한·중 양국으로부터 6자 회담 복귀를 종용 받는 북한이 6자회담 복귀 명분 축적과 한미 당국의 분위기 탐색 차원에서 남북대화에 응했을 가능성이다.
북핵 문제의 안보리 회부 등 미국으로부터 강한 압박을 받아온 북한이 6자 회담 전 남북대화를 열어 국제사회의 압력을 낮추면서 유리한 6자회담 분위기를 조성하려 하는 경우다. 동시에 뉴욕의 북미 채널을 통해 폭정의 전초기지 발언을 둘러싼 양측의 실랑이를 정리하면서 미국의 진의를 확인하는 수순을 밟을 수 있다.
이영섭기자 youn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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