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기적의 아기들입니다. 조국은 싫지만 저를 버린 생모와 고향땅이 보고싶어요!”
미국 애틀랜타에 사는 탄냐 딜벡 바칼씨의 말이다. 그는 베트남에서 태어났다. 아주 어릴 적에 미국으로 왔다. 조국은 자신을 버렸기 때문에 싫다. 기적의 아기라고 하는 이유는 사이공 함락(4월 30일) 직전에 사지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1975년 4월 2일. 월드 에어웨이즈 항공사의 에드 데일리 회장은 미군과 함께 특별기에 유아 20명을 태웠다. 작전명은 ‘아기 구출 작전’이었다. 대부분 고아이거나 부모한테 버림받은 아이들로 그냥 버려두면 누가 제대로 돌봐주지 못할 아이들이었다. 사이공(현 호찌민시) 함락 직전까지 비행기편으로 고향을 탈출해 미국에 정착한 아이들은 모두 3,000여 명.
바칼씨는 6월에 생모가 있는 고향 응으옌 뚜 킴 풍을 찾는다. 함께 가는 19명도 모두 에어웨이즈를 함께 탔던 아기들이다.
바칼씨는 16일 AP 통신과 인터뷰에서 베트남전 종전 30주년을 맞아 처음 고향을 찾는 데 대해 떨리는 목소리로 “내 인생이 역사의 한 부분이라는 느낌이 든다. 실제로 엄마를 만날 것만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미 현지에 아기 때 사진과 자신의 사연을 다룬 미국 신문 스크랩 등을 보낸 상태다. 수 주동안 베트남 신문에 아기 때 사진 등을 광고로 실었고 생모의 회신만 기다리는 상태다.
바칼씨는 베트남어도 모르고 원래 이름도 모르고 생일도 모른다. 다만 31살로 추정할 뿐이다. “나 자신을 찾고 싶습니다.”
백인 가정에 입양된 그는 애틀랜타 교외에서 식료품점 점원을 하며 자랐다. 늘 ‘구크(gookㆍ동양인을 경멸적으로 일컫는 말)’라는 비아냥을 들어야 했다. 그는 어머니는 중국계였고, 아버지는 미군이었다고 믿고 있다.
박석원 기자 s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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