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국내 담배 출하량은 전년보다 무려 22% 증가한 1,054억700개비로, 흡연인구(1,080만명 추정) 1인 당 488갑이나 된다. 경기 시름을 회색 연기에 날려보낸 골초가 부쩍 늘었다고 생각했더니 사정은 좀 달랐다.
작년 하반기부터 ‘새해 담뱃값 500원 인상’이 기정사실화하면서 소매상들의 미리 사재기 열풍이 실로 대단했던, 그 반작용으로 올 1분기 담배생산은 지난 해 같은 기간보다 52.4%나 줄었다. 연초 금연 트렌드나 가격인상에 따른 수요감소도 있겠지만 역시 사재기 효과가 컸다.
▦그런데 최근 이 문제가 묘한 논란으로 번졌다. 박승 한국은행 총재가 “담뱃값 인상으로 1분기 성장률이 3%에 못 미칠 것”이라고 말한 게 발단이다. 실질 부가가치 창출액을 기준으로 볼 때 담배 한 품목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0.62%인데 담배생산이 50% 이상 급감하는 바람에 성장률이 2%대로 떨어졌다는 탄식이자 변명이다.
참고로 에쎄(2,500원)의 경우 담배소비세(641원) 지방교육세(321원) 건강증진기금(354원) 연초농가안정기금(15원) 폐기물부담금(7원) 부가가치세(205원) 등 세금과 기금이 1,543원에 달하고 나머지는 제조원가와 도ㆍ소매 마진이다.
▦졸지에 저성장의 책임을 뒤집어쓴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이 다급해졌다. ‘비싸야 안 사고 안 피운다’는 소신 아래 담뱃값 인상을 주도해왔고 7월에 또 다시 500원을 올리기로 경제부처와 이미 합의했는데 분위기가 갑자기 이상해졌다. 그래서 만든 논리는 “국민건강은 한 나라의 경쟁력과 생산성에 무엇보다 중요하다.
한은의 주장은 물량개념만 중시해 보다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는 것이다. 담배를 피우지 않으면 ???질이 높아질 뿐 아니라 그 돈으로 다른 재화나 서비스를 살 수 있고, 저축했다면 투자로 연결됐을 것이라는 설명도 곁들인다.
▦이 논란에 한덕수 경제부총리도 끼어들었다. “담뱃값을 올리는 것이 원칙이지만 가격인상 충격 등을 점검해 시기는 복지부와 협의하겠다.” 그러나 인상 시기를 늦출 것 같지는 않다. 재정경제부나 한은 입장에선 담배소매상들의 왕성한 사재기가 일어나야 2분기 성장률 목표를 채울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정도면 조삼모사(朝三暮四)도 유분수다. 담배세금으로 건강보험재정 적자를 메꾸려는 조세편의주의도 얄밉지만 국민을 원숭이로 아는 셈법은 어처구니 없다.
이유식 논설위원 y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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