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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私學] <6> 걸어온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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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私學] <6> 걸어온 길

입력
2005.05.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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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권 최초의 중등학교인 영명학교는 1906년 10월 15일 미국 감리교 우리암(Frank E C Williams) 선교사가 백제의 고도 공주시 중동 현위치에 설립했다. 설립 당시 교명은 중흥학교였으나 1909년 정부 인가를 받으면서 교명을 영명학교로 바꿨다. 중흥학교 설립 1년 전인 1905년 역시 미국 감리교의 사애리시(Alice J Hammond) 선교사가 공주에 설립한 명선여학당과 1932년 통합했다. 영명중ㆍ고는 중흥학교가 세워진 1906년을 개교연도로 삼고 있다.

영명학교는 항일독립운동의 중심이었다. 1919년 4월 1일 영명학교 교사와 학생들이 중심이 돼 공주 독립만세운동을 일으켰다. 이들은 기숙사에서 독립선언서 1,000매를 등사해 거리에서 배포했다. 이 일로 교사 3명과 학생 6명이 체포돼 징역형을 받았다. 1929년 광주학생항일운동 당시 영명학교 학생들은 동맹휴학을 결의했고 이로 인해 학생 7명과 교사 2명이 옥살이를 했다.

일제는 결국 30여년간 영명학교를 운영하며 많은 애국지사를 길러낸 우리암 목사와 사애리시 여사를 1940년 국외로 추방한 뒤 이듬해 영명학교를 강제 폐교 조치했다. 영명은 해방 4년 후인 49년 영명상업중학교로 복교했고 2년 뒤 비로소 영명중ㆍ고교로 제자리를 찾았다.

영명은 걸출한 인재들을 많이 배출했다. 민주당 대통령 후보를 지낸 유석 조병옥 박사가 2회 졸업생이다. 유관순 열사도 오빠 유준석, 사촌오빠 유경석을 따라 영명학교를 다닌 뒤 이화학당으로 편입했다. 여성으로서 국내 최초로 목사 안수를 받은 전밀라 목사도 이 학교 출신. 영명학교 1회 졸업생인 황인식씨는 해방 후 초대 관선 충남도지사와 군산해양대 학장 등을 지낸 뒤 복교된 모교의 초대 교장으로 일했다.

우리나라 기독교계에는 영명학교 출신이 많다. 새문안교회 목사와 대한예수교 장로회 총회장, 숭실대 총장을 지낸 강신명 목사가 이 학교 졸업생이다. 또 YMCA 이사장, 기독교방송 이사장, 대한감리교 감독회장을 역임한 표용은 목사도 영명학교 출신. 표 목사는 현재 영명중ㆍ고 재단이사장을 맡고 있다.

공주=전성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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