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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전투 식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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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전투 식량

입력
2005.05.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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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말 한미연합 팀스피리트 훈련을 처음 할 때다. 해군함정 포술장교를 거쳐 미 해군 전쟁상황실에서 근무하다가 포항 해병사단 함포연락장교로 갔다. 인천상륙작전 이후 최대 상륙훈련에서 한미 함대의 함포지원을 계획, 통제하는 임무였다. 연대규모 해병 상륙군과 함께 함정에 탔다가 포항 근처 공격해안에 진입, 상륙군의 함포 유도를 통제하는 일이다. 내게 배속된 해병 통신병들은 야전용 미제 ‘케네디 지프’와 트레일러에 무전장비와 텐트 등은 가득 실었는데, 1주일치 전투식량은 달랑 라면 한 상자뿐이었다.

■ 식사는 어떻게 하냐고 묻자, "사단본부에서 추진한다"는 대답이었다. 무슨 소린가 했더니 평소 훈련 때면 끼니를 포항에서 싣고 온다는 얘기였다. 해안 가까이 위치한 지휘부라면 모를까, 야산 고지에 흩어진 상륙군 전체 식사를 배달한다는 건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러나 끼니 때가 되자 어김없이 ‘식사추진’ 트럭들이 당도했다. 고지에서 일제히 내려온 상륙군이 길게 줄서 플라스틱 식판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식사를 받는 모습은 미 해병들과 대조적이었다. 그들은 얼굴에 온통 위장 칠을 한 것에 어울리게 제자리에서 전투식량 캔을 까먹고 있었다.

■ 그 시절 우리 군도 건빵 말고도 전투식량이 있었다. 베트남전을 계기로 미군 C-레이션을 본 따 찐쌀과 김치 등을 캔에 담았다. 그러나 품질이 조악한데다 끓여야만 밥을 먹을 수 있었다. 이것마저 그 때 형편으로는 값비싸 그야말로 비상용이었다. 해군에서는 보유기한이 다 돼 교체할 때나 장기 출동으로 신선한 부식이 떨어졌을 때 더러 전투식량을 이용했다. 그나마 애초 말라비틀어진 재료로 만든 게 많아 배추시래기 정도가 쓸모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 형편이 나아지면서 전투식량도 발전했다. 최근 군복무 세대는 야채비빔밥 쇠고기짜장 등 레토르트 타입 전투식량에 익숙하다. 우리 입맛에 맞아 제대 뒤에도 찾는 이가 있고, 여가활동에 편리해 전문 인터넷쇼핑 몰까지 생겼다. 다만 뜨거운 물에 데워야 하기 때문에 진짜 전투상황에서 쓰기 곤란한 것은 여전했다. 서양처럼 찬 음식을 즐기지 않는 식습관이 문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한 자체 발열식 전투식량을 곧 보급한다고 한다. 봉지만 뜯어 놓으면 밥이 된다니 이젠 미군이 부러워할 만하다. 물론 아무리 좋아도 실제 전투에서 쓸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강병태 논설위원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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