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이나 물, 차를 담아 마시던 조선의 사발을 일본인들이 국보급 도자기로 여기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경남 진주 지역에서 생산된 것으로 추정되는 일본 대덕사 고봉암 소장 ‘기좌이몽이도 자완(喜左衛門井戶 茶碗)’은 국보이고, 쯔쯔이쯔쯔이도(筒井筒井戶)도 명품 도자기다.
이유야 여럿이지만 중요한 두 가지는 사발 전체의 자연미와 사발 굽에 올록볼록하게 방울처럼 유약이 맺혀 만들어진 유방울(일본말로는 ‘가이라기’)이다. 이 유방울을 잡았을 때의 느낌은 일본 사무라이들이 칼 손잡이에 감았던 바다표범 가죽의 손맛과 비슷하다고 한다.
하지만 이 자기들은 일본으로 넘어가 마치 그들에 의해 참다운 미가 새로 발견된 것처럼 선전되고 있다. 전통의 조선 사발을 처음으로 재현한 도예가 신정희옹의 장남으로 대를 이어 사기장이 된 신한균(45)씨가 우리 도자기에 묻어 있는 일본 잔재를 청산하기 위해 애쓰는 것도 그 때문이다. ‘사기장 신한균의 우리 사발 이야기’는 신씨의 그런 노력을 400여 장의 생생한 사발 사진과 함께 담은 책이다.
저자에 따르면 따뜻하게 끌어 당기는 맛, 있는 듯 없는 듯한 포용성, 자연과 가까운 친화력을 품고 있는 조선 사발을 실수로 만들어진 ‘막사발’이라고 폄하하게 된 것은 일본의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가 그런 이름을 붙인 이후부터다. 조선의 사기장들을 통해 다도의 예법과 정신을 확립해 놓고도, 조선인들이 모르던 미학을 자신들이 발견해 알렸다는 식으로 떠벌이는 것이나, 그 식민사관의 논리에 세뇌돼 우리의 도자기 전문가들까지도 앵무새처럼 그 말을 되뇌고 있는 것도 문제다. 그래서 저자는 책에서 아예 이도 자완이라는 일본 말을 버리고 황태옥(黃台玉) 사발이라는 우리말을 이름을 붙였다.
내용이 좀 장황한데다, 친근감을 주려 경어를 쓴 것이 오히려 독서를 방해하긴 하지만, 우리 사발의 아름다움을 오롯이 되살려 내려는 사기장의 땀방울이 곳곳에 묻어난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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