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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한국 최고의 가게 - 장인정신·商道로 일군 장수 가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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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한국 최고의 가게 - 장인정신·商道로 일군 장수 가게들

입력
2005.05.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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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조직합리화나 기업 발전의 제1원칙은 ‘변화’와 ‘혁신’이 차지하게 되었다. 그러나 본디 뜻이 그게 아닌데도 불구하고 그 원칙을 현실에서 적용할 때는 과거의 질서와 사고, 관행을 깡그리 때려 부수자는 식이 많다. ‘낡은 것은 모두 썩었다’는 건 또 얼마나 잘못된 고정관념인가.

늙을 ‘노(老)’ 자에 가게 ‘포(鋪)’ 자를 써 ‘노포’라는 말이 있다. 대를 이어 경영하는 오래된 점포라는 뜻이다. 말 자체만 생경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이런 가게나 기업을 주위에서 찾기가 쉽지 않다. 실제로 국내 상장기업 가운데 창업 후 50년 이상을 버틴 업체는 37개뿐이라고 한다. 40년 전 국내 100대 기업 가운데 지금까지 살아남은 곳은 단 12곳이라는 분석도 있다.

작아도 오래된 가게를 생각할 때 퍼뜩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일본이다. 일본에서는 현재 창업 1,000년이 넘은 가게가 10여 개 정도이고, 500년 역사의 노포가 20여 개에 이른다고 한다. 우리와 똑 같은 한자를 써서 ‘시니세’라고 부르는 100년 이상된 가게는 무려 1만5,200개를 넘는다. 가족 경영으로 대를 이어오는 유럽의 루이뷔통, 로레알, 다농 등도 규모가 크다 뿐이지 역시 ‘노포’다.

쉽게 차려서 반짝 성공했다가 금세 망해 흔적도 찾을 수 없는 가게나 기업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겠는가. 노포는 끈기와 집념으로 명품을 만들겠다는 장인정신, 원칙과 신용을 목숨처럼 소중히 여기는 상도덕, 핵심은 지키되 고객의 요구에 맞춰 끊임 없이 변신하려고 노력하는 진정한 혁신의 정신을 갖고 세월의 힘을 이겨내는 장사란 무엇인지 증거하는 현장이다.

2003년 9월부터 이기창 한국일보 문화 대기자가 김용범 중앙대 예술대학원 예술경영학과 교수의 도움을 받아 가며 한국일보에 연재한 ‘한국의 노포’는 50년 이상 대를 이어 남아있는 우리 전통의 가게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그 가업 대물림에 담긴 정신은 무엇인지를 찾으려는 새로운 시도였다. ‘한국 최고의 가게’는 1년 가까이 게재된 이 연재물을 묶은 책이다.

책은 모두 34개의 가게를 ‘한우물 경영’ ‘집중 경영’ ‘신뢰 경영’ ‘명품 경영’ 등 중요한 장사 원칙에 따라 8가지로 분류했다. 대동소이한 이 분류들을 관통하는 한 가지 정신은 바로 ‘장인 정신’이다. 수제 등산화만 69년을 만들어온 송림제화 창업주 이귀석옹은 차남 이덕해씨가 가업을 잇겠다고 마음을 굳힌 상황에서도 걱정스러워 1996년 세상을 떠나면서 다시 한 번 가업 계승을 당부했다. 그리고 유언과 함께 100여 통의 편지를 남겼다. ‘편한 신발을 만들어주어서 고맙다’는 고객의 감사편지였다. 49년 창업해 서울 불고기로 유명한 옥돌집의 창업주는 가게의 명성을 지킬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물려주어야 한다며 직계가족이 아닌 외사촌 동생에게 경영권을 넘겼다.

89년째 ‘고객 한 사람에 옷 한 벌’이라는 정신으로 가업을 잇고 있는 종로양복점, 전통을 이으면서 끊임없이 현대화를 시도하고 있는 한복집 보신&준, 얼굴 사진으로 일가를 이룬 김스튜디오, 제조법을 물으러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어도 "맛있게 만들라"며 친절하게 호두과자 제조법을 일러주는 천안의 학화호두과자…. 세월을 견디면서 한국 최고가 된 작지만 강한 가게들에서 지속생존 경영의 원칙을 배울 수 있다.

안타까운 것은 소개된 노포의 가세가 점포마다 흥한 것이 아닌데다, 주로 음식점이 많다는 점이다. 저자는 한국인이 작은 것에 만족하지 않고 계속 성장을 추구하는 기질이 있어 대부분의 가게나 작은 기업이 규모를 확대하면서 부침을 겪었으며, 상인을 천시하는 유교 전통이 인재의 유입을 막고 대를 잇는 전승을 어렵게 했다고 지적했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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