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는 울고 불며 발버둥치는데 도대체 이유가 뭔지 알 수 없다고? 초보 엄마들의 흔한 육아 고민 중 하나가 아기가 뭘 원하는지 알기 어렵다는 것. 말 못하는 갓난 아기라고 생각이 없진 않을텐데, 아기와 대화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생후 27개월 된 아들 신혁이를 둔 박소현(34·서울 송파구 문정동)씨는 베이비사인을 통해 그 해결책을 찾았다. "15개월때 처음 베이비사인을 가르쳤는데 아이가 금방 사인을 배우고 자기가 말하고 싶은 것을 손짓으로 표현하는 거예요. 깜짝 놀랐지요. 말은 못해도 의사 표현을 다 하니까 칭얼대는 것도 거의 없고 또래들보다 훨씬 표현이 풍부한 것 같아요."
신혁이는 엄마와 산책을 할 때면 보이는 것마다 손짓으로 나무, 해님, 강아지 등을 표현하고 ‘우유 더 주세요’ ‘기저귀 갈아 주세요’ 등의 기본적인 생리 욕구까지 표현했다. ‘사랑해요’나 ‘슬퍼요’ 등 감정 상태도 손짓으로 이야기했다. 손짓 대화를 하면 자연히 엄마와 눈 맞추는 일이 많아지니까 심리적으로도 상당히 안정된 것은 부수적 효과다.
아기와의 대화를 원하는 초보 엄마들 사이에 베이비사인 배우기가 인기를 얻고 있다. 미국의 수화 연구자 조셉 가르시아가 1980년에 처음 주창한 베이비사인이란 말이 아닌 손짓 언어를 통해 아기와 부모가 커뮤니케이션을 하게 한 것이다. 갓 태어나서 36개월까지는 말을 이용해 욕구를 표현하는 것이 불가능하거나 어려운 시기이기 때문에 부모가 아이의 수준에 맞춰 함께 손짓 언어를 배우고 사용한다. 국내에는 에브리 베이비사인 연구소(www.babysign. net 소장 문승윤)에서 2년전부터 보급을 시작, 현재 각종 문화 센터에서 강좌를 열고 있다.
베이비사인은 손을 움직이는 것에 익숙해지는 생후 7, 8개월 무렵부터 시작한다. 엄마가 아기에게 우유병을 줄 때마다 아기와 눈을 맞춘 상태에서 ‘우유’라는 손짓 언어를 하면서 "아가야, 우유 먹자"식으로 유도하면 아이들은 조건 반사적으로 우유와 손짓 언어를 동일시한다. 이 같은 조건화가 일단 성공하면 아기는 우유를 먹고 싶을 때 스스로 손짓 언어를 해 보이기 시작하고 울거나 떼를 쓰지 않아도 원하는 것을 얻는 방법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기저귀를 갈아 달라는 표현도 양 손끝으로 기저귀 허리춤을 짚는 간단한 동작으로 나타낼 수 있다. 현재까지 개발된 베이비 사인은 모두 200여개. 그러나 일상적으로는 50개 정도만 익혀도 아기와 엄마가 충분히 대화를 나눌 수 있다.
무언의 대화를 가능하게 해 준다는 점 외에도 베이비사인은 아이들의 인지 능력을 개발시키는 데 효과적이다. 손짓을 눈으로 열심히 보는 과정에서 관찰력이 키워지며, 사물의 형태나 느낌을 최대한 단순화시킨 손짓 언어에 익숙해지면서 사물의 특성을 집약적으로 집어 내는 능력이 길러진다. 연구소의 문승윤 소장은 "그림 어휘력 검사를 한 결과 베이비사인을 배운 아이들은 일반 아이들에 비해 어휘가 2배 이상 풍부한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상형 문자에 가까운 손짓 언어가 사물의 형태를 머리 속에 그려내는 연상 작용을 강화해주기 때문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베이비사인은 부모가 배워서 아기에게 가르쳐야 한다는 점에서 아기에 앞서 부모의 인내심과 지속적인 시도가 중요하다. 문 소장은 "베이비사인은 조건화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부모가 즐거운 마음으로 꾸준히 해 줘야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말했다.
이성희기자 summ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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