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황산(黃山)은 예로부터 구름이 바다를 이룬다 하여 운산(雲山)이라 일컬어졌다. 바람의 기운을 머금은 운해(雲海)가 봉우리 사이를 흘러 다니며 기암괴석과 노송을 감추었다 드러내기를 반복하니 그대로 한 폭의 산수화다. 기암의 봉우리마다 뿌리 내린 천태만상의 노송들은 운해와 어우러져 더욱 기묘한 풍광을 연출한다.
황산은 운해(구름바다), 기송(기이한 소나무), 괴석, 온천의 4절(絶)로 유명하다. 최근 ‘산은 올라갈 땐 남이지만 내려올 땐 친구가 되는 곳’이라는 대한항공 광고 문구로 우리와 더욱 친근해졌다. ‘황산을 보고 나면 천하에 볼 산이 없다’는 말이 전해질 정도로 중국인들이 평생에 꼭 한 번은 가고 싶어하는 이 명산은 1990년 유네스코가 세계 자연 유산으로 지정했다. 중국 남부 안후이성(安徽省) 남동부에 위치한 황산은 남북 40km 동서 30km의 땅위에 72개 봉우리와 24개의 계곡으로 이뤄진 산악 지대다. 연중 안개 끼는 날이 족히 250일은 되는 지역으로, 특히 비 그친 후 계곡 아래의 운해가 따뜻한 공기에 밀려 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모습은 천하 절경으로 꼽힌다. 북해, 서해, 천해, 동해, 전해 등으로 황산을 구분 지은 것도 바로 운해가 동서남북 골짜기를 따라 갈라지는 모양을 본 따 이름을 붙인 때문이다.
황산을 오르는 코스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산 아래 자광각이나 운곡사에서 케이블카를 이용할 경우 8~10분만에 해발 600~800m 지점까지 오를 수 있다. 케이블카 요금은 외국인의 경우, 가장 많이 이용하는 운곡사~백아령 구간(2.2km)이 85위안(약 1만3,000원)이다. 도보로 오를 경우 동쪽 운곡사나 서쪽 온천 지구에서 출발해 4~5시간 가량 부지런히 발품을 팔아야 한다.
황산의 등반로는 중국의 다른 산들과 마찬가지로 대부분 돌계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자그마치 14만 여 개의 계단이 산 능선과 깎아지른 절벽을 가로질러 굽이 굽이 이어져 있다. 자연 훼손이 아닌가 생각하기 쉬운데 오히려 주변 경관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자연을 보존하는 지혜를 담고 있다. 가이드가 "계단길이 무릎에 손상을 주기 쉬우니 주변 풍광을 감상하며 느긋하게 걷는 게 상책"이라고 일러준다.
자광각에서 케이블카로 옥병루까지 오른 뒤 황산 최고봉인 연화봉(1,860m)을 거쳐 이날 산행의 백미인 서해대협곡을 종주하는 약 15km의 코스를 택했다. 본격적인 서해대협곡 산행이 가파른 절벽 사이에 콘크리트 다리를 걸쳐 만든 보선교를 지나면서 시작된다.
깊이 수백 미터의 절벽 중턱을 가로질러 계단길로 난 대협곡 루트는 마치 공중에 허공다리를 걸어놓은 듯 해 아래를 쳐다보기만 해도 다리가 후들거린다. 수천 길 낭떠러지의 아찔한 절벽과 거대한 기암봉들의 그림자가 어우러진 절경이 마치 ‘마귀의 환영’ 같다고 해서 선인들이 서해대협곡을 가리켜 마환세계(魔幻世界)라고 칭한 게 지당하게 느껴진다. 절벽에 매달린 계단을 걷다 위를 쳐다보니 거대한 칼로 쳐낸 것 같은 뾰족한 봉우리들은 금세 머리 위로 쏟아져 내릴 기세다. 아래로는 까마득한 협곡이 시커먼 입을 벌리고 있으니 시선을 돌리기조차 쉽지 않다.
서해대협곡 루트는 1979년 76세의 나이로 황산에 올랐던 등소평이 협곡을 보고 감탄하여 개발을 지시했다고 한다. 그 후 12년간의 설계 기간과 9년간의 공사 기간을 거쳐 2001년에야 완공됐다. 황산 입구 매점에서 파는 등산로 지도에도 표시돼 있지 않을 정도로 아직까지 많이 알려지지 않은 코스이다. 협곡 지대를 빠져 나오는 데만 대략 2~3시간이 걸렸다. 협곡의 절경도 감상하고 다리가 뻑적지근할 정도의 피로감도 느낄 수 있어 등산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더 할 나위 없이 매력적인 코스이다. 황산의 등산로에 설치된 난간과 쇠줄에는 어김없이 수많은 자물쇠가 채워져 있다. 연인들이 사랑의 증표로 자물통을 채운 뒤 열쇠를 절벽 아래로 던지는 풍습 때문이란다. 헤어지려면 그 열쇠를 다시 찾아야 한다는데, 깊은 골짜기일수록 더 많은 자물쇠가 매달린 것은 그 때문일까.
황산의 일출이 가장 아름다운 곳은 청량대다. 이 곳을 중턱에 품은 사장봉(1,670m) 정상은 또 일몰의 명소. 마치 원숭이가 구름 바다를 바라보는 것 같다 하여 ‘후자관해’라 이름 붙여진 바위 또한 이 곳에 있다. 청량대의 일출을 감상한 뒤 비래석, 서해문을 거쳐 백아령으로 이동하면 서해대협곡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숲을 나와야 비로소 숲이 보이는 법. 서해대협곡의 시원한 전체 비경을 보는 순간 대협곡 종주때 쌓인 피로가 거짓말처럼 싹 가신다.
황산(중국)=김명수기자 lecero@hk.co.kr
■ 여행수첩
●황산은 계단길이 많아 관절이 약한 사람들은 보호대를 준비하는 게 좋다. 등산 스틱이 오히려 거추장스러울 수가 있다. 그러나 미끄러지지 않는 등산화는 필수 준비물이다. ●황산행은 대개 상하이를 경유한다. 상하이에서 중국 동방항공 등 비행기로 1시간 가량 걸린다. 황산시에서 황산 입구까지는 차로 1시간 거리다. 최근 서해대협곡의 비경이 알려지면서 이 코스를 포함한 황산 관광 상품이 관심을 끌고 있다. 특수 지역 및 오지 여행을 전문으로 하는 혜초여행사(www. hyecho.com)는 중국 황산 서해대협곡 트레킹 상품을 3박 4일, 4박 5일 일정으로 각각 69만원, 78만원에 판매중이다. (02)733-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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