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남북한의 저작권 문제 합의는 그 동안 무단으로 북한 서적을 출판해온 남한 출판사들이 북한에 저작권료를 보상하는 방식을 처음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2003년 4월 저작권 보호에 관한 베른협약 가입 이후 북한은 남한의 북측 저작물 무단 이용에 불만이 적지 않았다.
남북교류협력사업을 벌이고 있는 민간단체인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에 따르면 재단 출범 이후 1년 여 동안 북한 저작권 당국자와 수 차례 회담하는 과정에서 북측이 지적한 대표적인 불법 출판물은 벽초 홍명희의 소설 ‘임꺽정’과 벽초의 손자 홍석중(84)씨의 소설 ‘황진이’와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정도. 재단 관계자는 "특히 ‘임꺽정’의 경우 40여 종의 불법 출판이 문제가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사계절출판사가 5~7일 개성에서 열린 저작권료 지불 관련 남북관계자 회담에서 ‘임꺽정’의 ‘밀린’ 저작권료를 15만 달러로 합의한 과정에서 통상의 인세 계산법이 동원된 건 아니다. 강맑실 대표는 "당초 저작권자인 홍석중씨 등 북측에서 제시한 액수는 이보다 많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1985년 ‘임꺽정’ 출간 이후 사계절이 여러 경로를 통해 저작권료를 지불하려 애썼으나 저작권자와 직접 협의가 어려웠고, 올해로 10년째 벽초의 고향인 충북 괴산에서 ‘홍명희 문학제’를 열고 벽초 생가 복원사업을 벌인 사정 등을 설명하며 15만 달러를 제시하자, 북측에서 흔쾌히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강 대표는 "올해부터 개정판으로 나올 ‘임꺽정’은 인세 10%로 합의했다"며 "출판사들이 적극적으로 북측의 저작권자를 찾아 저작권료를 주기 위해 노력하는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 향후 저작권 보상 협의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이번 회담에서는 ‘임꺽정’ 말고도 지난해 남한에서 출간돼 인기를 끌고 있는 홍석중씨의 소설 ‘황진이’와 ‘고려사’ 저작권 문제도 논의했다. 재단에 따르면 홍석중씨는 남측 출판사인 대훈서적과 공식 계약한 적이 없어 향후 책임(저작권료 지불 요구 등)을 묻고, 정식계약은 다른 출판사와 진행할 계획이다. 북측은 누리미디어가 북한의 조선사회과학원과 계약해 CD로 낸 ‘고려사’는 적법하지만, 신서원의 ‘고려사’(전11권)는 불법이라고 판단, 이번 회담에서 저작권 침해 배상 업무를 재단에 의뢰했다.
홍석중씨의 ‘황진이’를 영화로 제작키로 하고 각색권리금 지급 액수와 방법을 합의, 북한 소설을 남한의 영화사와 배우들이 영화로 만드는 것도 처음이다. 재단 이사장 직무대행인 송영길 열린우리당 의원은 "각색권과 관련한 금전적인 부분에 합의했다"며 "향후 북한에 세트장을 만들어 촬영하기를 희망했으나 북측은 내심 긍정적이면서도 확답을 피했다"고 말했다. ‘마리 이야기’ ‘꽃피는 봄이 오면’을 제작한 씨즈엔터테인먼트는 내년 봄께 촬영을 시작해 2007년 개봉을 목표로 하고 있다.
북한 저작권사무국은 이밖에도 집단 창작곡이 많은 북한 가요 등의 음악저작권은 저작권자의 승인 없이 사무국의 위임서만으로 남측에서 저작권 활용이 가능하도록 통일부에 새 통지서를 보낼 방침이라고 재단은 밝혔다. 또 3월 회담에서 북한 서적 270여 종의 저작권 관리를 위임받은 데 이어 이번에도 고전소설이나 민담 등 서적 51종과 단편동화 30편의 재출판권을 양도 받아 조선고전문학선집의 경우 정액의 저작권료를 지불하는 형태로, 기타 문학물은 인세의 방식으로 남측에서 내기로 했다.
재단 신동호 문화협력위원장은 "북한은 재단이 단일 창구가 돼 주기를 바라지만 아직 계약이나 관리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저작권 사업을 포괄적으로 위임 받지는 않았다"며 "향후 여러 기관이 참여하는 ‘남북저작권센터’를 만들어 북측 저작권을 일괄 관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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