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너럴 모터스(GM)의 덫에 걸려 미국의 주요 헤지펀드가 위기에 빠졌다는 소식이 전세계 증시를 강타했다.
일각에서는 1998년 러시아 투기채권에 투자했다가 1,000억달러가 넘는 손실을 입은 롱텀캐피털(LTCM)의 파산을 막기 위해 미국 정부가 36억달러의 구제 금융에 나섰던 사태가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제2의 롱텀캐피털 사태로 번질 경우 우리나라에도 큰 파장을 몰고 오게 돼 금융계에서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11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이날 새벽 미국 증시에서 다우지수와 나스닥지수가 각각 0.99%와 0.85%나 급락한 여파가 ‘쓰나미’ 식으로 전세계로 퍼져나갔다. 한국 종합주가지수는 1.17%나 하락했고, 일본과 홍콩 대만 등 동아시아 증시도 장중 한때 지수가 1% 이상 급락하는 등 동반 하락했다.
세계 증시가 요동친 것은 헤지펀드들이 GM의 주가를 잘못 예측, 거액을 베팅했다가 엄청난 손실을 봤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한때 세계 최고·최대의 자동차 회사였던 GM은 올들어 유가상승으로 주력 차종인 스포츠유틸리티 차량(SUV)의 판매가 20%나 급감하고, 퇴직직원에 대한 막대한 연금 부담으로 BBB-였던 신용등급이 투기등급인 BB로 두 단계나 하락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지난달 헤지펀드들이 GM 회사채는 상승하는 반면, 주가는 추가로 하락할 것이라는 판단을 내리고 회사채는 사들이고 주식은 공매도 포지션을 통해 파는 전략을 취한 게 직접적인 화근"이라고 설명했다. 월가의 억만장자이자 기업 사냥꾼인 커크 커코리언이 4일 GM 주식의 공개 매수를 선언하면서, 헤지펀드의 예상과는 정반대의 상황이 전개됐기 때문이다. GM 주가는 커코리언의 매수선언이 나온 당일 18%나 급등, 헤지펀드들은 공매도 포지션을 맞추기 위해 비싼 값에 주식을 사들여야 했다. 다음날인 5일에는 스탠더드 앤 푸어스(S&P)가 GM의 회사채 등급을 투기등급 수준으로 강등시켜 믿었던 회사채 가격마저 폭락해 손실이 두 배로 커졌다.
게다가 헤지펀드들은 GM과 관련한 파생상품에 추가 투자했기 때문에 실제로 손실이 집계될 경우 그 규모가 98년 LTCM사태를 넘어설 수도 있다는 우려까지 나오면서 주가 하락이 증폭됐다. 도이치뱅크와 JP모건 등 헤지펀드와 밀접한 거래를 한 것으로 전해지는 대형 투자은행의 주가도 각각 3%와 2% 급락했다.
피해를 입은 당사자로 거론되는 QVT파이낸셜과 GLG파트너스 등은 "괴소문에 불과하다"고 일축하고, 이날 오전 급락했던 일본과 대만 증시도 오후에는 낙폭이 크게 줄어드는 등 국제 금융시장이 빠른 속도로 진정되는 모습을 보였다.
한편 국내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현재로는 국내 금융시장에 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일부 우려대로 ‘제2의 LTCM사태’로 번지지만 않는다면, 국내 금융기관이 보유한 GM채권의 규모가 1,200억원에 안팎에 불과해 한국 금융권의 자체 역량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우려했던 것보다 GM에 대한 국내 금융기관 여신이 많지 않다"면서도 "일부 금융기관의 경우 채권 가격이 속락할 경우 평가 손실이 늘어날 수 있는 만큼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철환기자 chcho@hk.co.kr
이영태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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